반도체가 번 초과이익을 누가 나눠 갖나
코스피가 9% 가까이 폭락한 다음 날 첫 노사정 토론회가 열렸다. AI·반도체가 번 초과이익을 사회로 돌리자는 제안이 쏟아졌고, 경영계는 투자 위축을 경고했다.
하루 전, 코스피가 무너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앞장서 반도체주가 미끄러지면서 지수는 약 9% 빠졌다.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시장을 덮쳤다.
그 다음 날, 서울 용산구 피스앤파크.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주제는 반도체가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돈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다.
무슨 일인가
폭락 다음 날 열린 첫 노사정 테이블
고용노동부가 7월 14일 ‘AI 기술혁신에 발맞춘 새로운 사회 혁신의 길’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 노동계, 경영계가 함께한 첫 노사정 토론회다.
발단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 협상을 타결한 것이 계기가 됐다. AI 같은 기술혁신으로 생긴 초과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그 질문이 처음으로 공식 테이블에 올랐다.
법인세에 더해 ‘특별세’를 매기자
가장 논쟁적인 제안이 학계에서 나왔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AI·반도체 기업의 초과이익에 법인세와 별도로 특별세를 물리자고 했다.
거둔 돈은 산업 안으로 되돌린다는 구상이다. 연구개발(R&D) 투자, 산업단지 현대화, 청년 채용, 하청·중소사업장 노동자 복지에 쓰자는 것이다. 그는 최저임금과 공무원 보수, 플랫폼 노동자 최소 보수까지 아우르는 ‘국가임금위원회’ 설치도 함께 제안했다.
성과급 기준을 영업이익에서 순이익으로
정 교수는 성과급 계산법도 바꾸자고 했다. 지금은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나눈다. 이걸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유가 있다.
“영업이익에는 법인세와 이자비용, 환율 손실 등이 반영되지 않는 만큼 ‘영업이익 N%‘를 노사가 먼저 나누면 주주와 국가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몫을 침해할 수 있다.”
한편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다른 길을 제시했다. 초과이익을 현금 임금으로 쪼개는 ‘사회연대임금’보다, 산업 전체에 투자하는 ‘사회연대투자’가 낫다는 것이다. 원청과 하청이 함께 연구개발을 하고, 청년과 전문인력을 키우고, 전직·재취업 훈련에 돈을 쓰자는 취지다. 나눠주기보다 파이를 키우자는 쪽이다.
노동계는 ‘AI가 사람을 평가할 때’를 걱정했다
노동계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초과이익의 사회적 환원, 그리고 AI 도입 과정의 노동권 보호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AI를 채용·성과평가·보상에 쓸 경우 그 평가 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나아가 노조가 참여하는 ‘인적 재심위원회’에서 AI가 내린 결과를 다시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겨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청년특위 위원장은 청년을 앞세웠다. “AI 도입과 확산으로 가장 피해를 입는 계층은 청년”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용보조금을 줄 때 ‘고용 안정성’을 조건으로 걸어, 정규직 채용과 2년 이상 고용 유지에만 인센티브를 몰아주자고 했다. 현행 24%인 법인세 최고세율에 30%, 35% 구간을 새로 만들어 세수를 더 걷자는 주장도 폈다.
국회 밖에서도 같은 날 불이 붙었다
토론회 밖에서도 비슷한 제안이 이어졌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원내대표는 ‘반도체 국민배당’을 꺼냈다.
반도체 산업에는 세액공제와 전력·용수 같은 공공 인프라 지원이 들어간다. 용 원내대표는 이 국가 지원의 일부를 기업 주식으로 되돌려 받자고 했다. 그 주식을 재원으로 국민배당형 국부펀드를 만들자는 특별법 제정 제안이다. 초과이익이 국가의 지원 위에서 만들어진 만큼 국민도 성과를 나눠야 한다는 논리다.
진보당 김종훈 전 동구청장도 울산시의회에서 목소리를 보탰다. 반도체 성장으로 생긴 초과 세수를 취약계층에 쓰자는 것이다.
“반도체 성장이 가져온 초과 세수를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의 삶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도록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
그는 동구청장 시절 초단시간제 없는 일자리 정책을 폈던 경험을 들며 진보정당의 실행력을 강조했다.
Q&A로 짚어보기
Q1. ‘초과이익 특별세’가 정확히 뭔가?
기업이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 크게 번 이익, 즉 초과이익에 법인세와 별개로 세금을 한 번 더 매기자는 제안이다.
핵심은 ‘별도’다. 지금도 기업은 법인세를 낸다. 여기에 AI·반도체처럼 유난히 많이 번 분야에 세금을 추가로 물려, 그 돈을 R&D와 청년 채용, 하청 노동자 복지에 쓰자는 구상이다. 아직 제안 단계이고 법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Q2. 왜 하필 지금 이 논의가 나왔나?
계기가 겹쳤다.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 협상을 타결하면서, 기술혁신이 낳은 초과이익을 어떻게 나눌지가 화두가 됐다.
타이밍도 극적이었다. 하필 코스피가 약 9% 폭락한 바로 다음 날 토론회가 열렸다. 호황이 언제 꺾일지 모른다는 불안과 ‘지금 이익을 나누자’는 요구가 같은 날 부딪힌 셈이다.
Q3. 성과급 기준을 영업이익에서 순이익으로 바꾸면 뭐가 달라지나?
나눌 수 있는 돈의 크기가 달라진다.
영업이익은 세금과 이자, 환율 손실을 빼기 전 숫자다. 여기서 성과급을 먼저 떼면, 정작 세금과 주주 몫으로 갈 돈이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세금·이자까지 다 빼고 남은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삼자는 게 정흥준 교수의 주장이다. 노사가 먼저 챙기기 전에 국가와 주주 몫을 지키자는 취지다.
Q4. 정부는 어느 편에 섰나?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심판’이 아니라 ‘중재자’를 자처했다.
그는 산업화 시대의 낡은 문법으로는 새 시대를 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회계약 논의에 정부는 심판자 역할이 아니라 대화의 촉진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다음 달부터 노사단체·전문가·청년·플랫폼 노동 관계자가 참여하는 논의체를 돌려, 연내에 질문 중심의 녹서(정책 논의를 위한 예비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양측의 시각
초과이익을 사회로 돌리자는 쪽
노동계와 진보 정치권이 여기에 선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청년특위, 기본소득당, 진보당이 한목소리를 냈다.
논리는 하나로 모인다. AI·반도체가 벌어들인 초과이익은 세제 혜택과 전력·용수 같은 국가 지원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열매를 사회가 나눠야 한다고 본다. 대상은 청년,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같은 취약계층이다.
방법도 구체적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리고(이겨레 위원장), 초과이익에 특별세를 신설하고(정흥준 교수), 국가 지원을 주식으로 환수해 국민배당 펀드를 만들자(용혜인 원내대표)는 안이 나왔다. 김종훈 후보는 초과 세수를 취약계층 지원에 쓰자고 촉구했다.
강제 환수에 신중한 쪽
경영계는 선을 그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대표적이다.
경총은 영업이익에 연동한 성과급을 임금으로 보지 않는다. “경영성과의 사후 배분으로 경영판단 영역에 가깝다”는 것이다. 노사가 단체교섭으로 이를 못박는 데 반대한다. 다만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이사회 결정 전에 노사협의회에서 성과배분 방향을 논의하는 방식은 검토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대신 경총은 다른 것을 요구했다. 첨단·신산업의 연구개발 경쟁력을 지키려면 일정 소득 이상의 연구·전문인력에게는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빼줘야 한다는 것이다. 강제 환수가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전망: 왜 중요한가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날은 첫 테이블이었을 뿐이다.
지켜볼 지점은 세 가지다. 먼저 정부다. 노동부가 다음 달 꾸릴 논의체와 연내 녹서가 이 논쟁을 어디로 끌고 갈지가 관건이다. ‘심판이 아닌 촉진자’를 자처한 정부가 실제로 어떤 그림을 내놓을지 아직 알 수 없다.
다음은 국회다. 특별세, 법인세 인상, 국민배당 국부펀드는 모두 입법이 필요하다. 제안이 법안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말잔치로 끝날지가 남았다.
마지막은 반도체 업황 그 자체다. 초과이익을 나누자는 논의가 무르익는 사이, 그 이익이 계속될지부터가 불확실하다. 코스피 폭락이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나눌 파이가 얼마나 클지, 아니면 이미 정점을 지났는지, 그 답에 따라 이 논쟁의 무게도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