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술집 비상구는 왜 잠겨 있었나
방콕의 한 술집에서 불이 나 30명이 숨졌다. 비상구는 잠겨 있었고, 이 업소는 방염 자재 의무조차 없는 '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었다.
7월 12일 밤 방콕 북부의 술집 “롱 비어 나 랏프라오”. 무대 위에서 인디밴드가 연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천장에서 불꽃이 튀었다. 조명이 꺼지고, 불길이 낮은 천장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사람들은 출구로 몰렸다. 그런데 뒤쪽 비상구는 잠겨 있었다. 화염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창문 하나 없는 화장실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룻밤 사이 30명이 숨졌다
방콕 북부 짜뚜짝 인근의 술집 겸 라이브 공연장에서 대형 화재가 났다. 불은 7월 12일 밤늦게 시작돼 자정 무렵 13일로 넘어갔다.
이틀째인 오늘(7월 14일) 기준 사망자는 30명이다. 처음 27명에서 늘었다. 부상자는 70명이 넘고, 이 중 24명이 중태다.
숨진 30명 가운데 27명은 신원이 확인됐고 3명은 아직 미확인이다. 대부분 태국 국적으로 추정된다. 이날 무대에서 연주하던 인디밴드 “톳사칸”은 멤버 두 명을 잃었다.
불은 에어컨에서 시작됐다
1차 조사에서 지목된 발화 지점은 천장에 달린 에어컨 실외기다. 여기서 전기 합선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전과 함께 폭발하듯 불이 붙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불은 무대 부근에서 시작해 낮은 천장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문제는 장식이었다. 무대 주변에는 플라스틱 조화와 가연성 폼(스펀지 같은 발포 소재)이 잔뜩 쓰여 있었다. 불쏘시개가 벽과 천장을 두른 셈이었다.
왜 그렇게 많이 죽었나
불길 자체보다 무서운 것은 막힌 출구였다. 조사 결과는 참담했다.
화장실 인근 뒤쪽 비상구는 아예 잠겨 있었다. 정문 쪽 출입구 두 곳도 가구와 물건에 부분적으로 막혀 있었다. 뒤쪽 비상구 앞에는 사탕 판매대가 놓여 통로를 가로막았다.
주방 쪽 비상구는 선반에 눌려 좁아졌고, 손잡이조차 없었다. 비상구 표시등은 꺼져 있거나 부서져 있었다. 피해자 대부분은 창문 없는 화장실 안에서 발견됐다. 몸을 피했지만 끝내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배경
이 화재를 이해하려면 세 가지를 봐야 한다. 왜 이례적인 참사인지, 누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하필 지금 터졌는지다.
방콕에서 17년 만의 최악 화재
이번 화재는 방콕에서 17년 만에 가장 인명피해가 큰 화재로 꼽힌다. 30명이 한 업소에서 하룻밤에 숨진 규모 자체가 이례적이다.
이 술집은 스스로 최대 600명을 수용한다고 내세웠다. 태국어로는 “브루어리” 또는 “비어홀”이라 칭했다. 다만 화재 당일 실제로 몇 명이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누가 무엇을 걸고 있나
지금 이 사건에는 여러 주체가 얽혀 있다. 각자 다른 것을 걸고 있다.
방콕시 당국은 유사 업소 전수조사와 자재 규정 재검토를 예고했다. 국가경찰은 과실 수사에 들어갔다. 술집 측은 사과하며 협조를 약속했다. 화재·구조 전문가들은 규제 자체의 허점을 짚는다. 그 사이에 유가족과 생존자, 목격자들이 있다.
방콕 시장 차차트 시티품은 방콕광역행정청의 수장이다. 그는 화요일 시 행정 조직에 유사 업소 전수 실태조사를 지시하고, 기존 법 집행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태국 국가경찰청장 키티랏(키트랏) 판펫은 이번 화재를 수사하는 경찰의 총책임자다. 그는 월요일 “현재로선 과실을 수사의 주된 가설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왜 지금 터졌나
직접 계기는 천장 에어컨의 전기 합선이다. 그러나 그 한 번의 합선이 30명의 죽음으로 이어진 데는 겹겹의 이유가 있었다.
인화성 장식재, 잠긴 비상구, 막힌 통로, 꺼진 표시등이 한꺼번에 겹쳤다. 여기에 근본적인 배경이 하나 더 있다. 이 업소가 “유흥업소”가 아니라 “라이브 음악이 있는 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등록 구분이 왜 결정적인지는 아래에서 다시 짚는다.
Q&A로 짚어보기
Q1. 왜 화장실에서 그렇게 많이 발견됐나요?
불길과 연기를 피해 사람들이 화장실 쪽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방향에 창문이 없었다는 점이다.
근처 비상구는 잠겨 있거나 사용되지 않았다. 사탕 판매용 테이블이 통로를 막았거나, 어두워서 출구를 못 찾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Q2. 사람들은 불에 타서 숨진 건가요?
상당수는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한 구조공학 교수는 많은 사망자가 화상을 입기 전에 유독가스 흡입으로 숨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의 가스는 일산화탄소와 시안화수소다. 이른바 “독성 쌍둥이”로 불린다. 밀폐된 실내에서 폼 소재가 타면 이 가스가 빠르게 차오른다.
Q3. “음식점 등록”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내화(방염) 자재를 써야 할 의무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기 때문이다.
이 술집은 “유흥업소”가 아니라 “라이브 음악이 있는 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었다. 방콕 당국 확인 결과, 그래서 방염 자재 사용 의무 대상이 아니었다. 무대를 두른 조화와 천장의 폼이 규정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Q4. 업주는 어떤 사람인가요?
현지 보도에 따르면 이 업주에게는 전력이 있다. 과거 태국 야소톤주에서 다른 술집을 운영했는데, 그 술집도 2019년 12월 화재로 전소된 적이 있다.
당시엔 낮 시간대 화재여서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전해졌다. 같은 업주의 두 번째 화재라는 점이 이번 사건을 더 무겁게 만든다.
Q5. 지금 수사는 어디까지 왔나요?
경찰은 “과실”을 수사의 주된 가설로 보고 있다. 잠긴 문, 막힌 통로, 훼손된 비상구 표시등이 근거다.
방콕시는 유사 업소 실태조사와 규정 재검토에 들어갔다. 발화 원인과 안전규정 준수 여부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다.
양측의 시각
같은 참사를 두고 시선이 갈린다. 한쪽은 이 업소의 잘못에, 다른 쪽은 제도의 구멍에 초점을 맞춘다.
개별 업소의 과실로 보는 시각
국가경찰청장 키티랏(키트랏) 판펫은 이번 화재를 이 술집의 구체적 잘못에서 비롯된 사고로 접근한다. 잠긴 문, 막힌 통로, 꺼진 비상구 표시등이 그 근거다. 그는 “이는 부주의와 손님 안전에 대한 무시를 보여준다”고 했다.
방콕 시장 차차트 시티품도 같은 결을 짚는다. 그는 무작위 점검을 늘리겠다며 유사 업소 전수조사와 기존 법 집행 강화를 예고했다. 기존 제도의 틀 안에서 점검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이다.
술집 측도 책임을 인정하는 모양새다. 월요일 저녁 소셜미디어 성명에서 “이 비극적 사고에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유가족에 조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투명한 진상규명 과정”에 전면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구조적 안전 부실로 보는 시각
전문가들은 이 참사를 한 업소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규정 자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것이다.
태국공학협회의 화재안전 전문가 부사꼰 샌숙은 현장을 직접 조사했다. 그는 무대가 조화 등 인화성 소재로, 천장이 가연성 폼으로 장식돼 있었다고 확인했다. “비상구 표시등이 켜져 있었다면 문이 잠겼다는 걸 알아채고 열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핵심은 규제 공백이다. 이 술집이 “음식점”으로 등록돼 방염 자재 의무에서 애초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방콕 당국 스스로 확인했다. 태국구조공학회장 아몬 피만마스도 밀폐형 구조와 낮은 천장, 폼 장식재 자체가 화재 위험을 키웠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주의 과거 화재 전력은 이 시각에 힘을 싣는다. 우연한 일회성 사고가 아니라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라는 것이다. 방콕광역행정청이 자재 규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 자체가, 기존 규정에 빈틈이 있었음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전망: 왜 중요한가
당장의 관전 포인트는 수사의 결론이다. 경찰이 과실을 어디까지, 누구의 책임으로 규정하느냐다.
더 큰 질문은 제도에 있다. 방콕시는 유흥업소와 음식점 모두에 적용되는 장식·건축 자재 규정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재검토가 실제 규정 개정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참사 직후의 선언에 그칠지가 관건이다.
추모 현장을 찾은 한 대학생은 “안타깝다”는 말만 남겼다. 잠긴 문 하나, 꺼진 표시등 하나가 30명의 생사를 갈랐다. 이번 화재가 개별 업소의 처벌로 끝날지, 규정의 구멍을 메우는 계기가 될지는 아직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