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함 막은 그날 밤, 247만 표를 다시 센다
6·3 지방선거 개표소 봉쇄 시위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국회 국정조사로 이어졌다. 사전투표 존폐 공방부터 송파구 247만 표 재검표까지, 쟁점을 정리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밤.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이었다.
투표함을 실은 차량이 빠져나가려는 순간,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날의 여진은 한 달 넘게 이어져 국회로 옮겨갔다. 90여 명의 증인이 소환된 청문회, 그리고 247만 장을 다시 세겠다는 계획. 한국 선거관리의 신뢰가 지금 시험대에 올랐다.
무슨 일인가
90여 명이 불려 나온 청문회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14일 오전 10시 1차 청문회를 열었다. 정식 명칭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다. 위원장은 윤상현 의원이다.
소환 규모가 컸다. 증인 90여 명과 참고인 15명이 불려 나왔다. 위철환 중앙선관위원장 직무대행과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전·현직 선관위원이 포함됐다.
명단에는 과거 논란의 인물들도 있었다. 2023년 자녀 채용 비리가 불거졌던 박찬진 전 사무총장이 그렇다. 2022년 구로구 개표 오류 관련자, 잠실 충돌 당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도 들어갔다. 다만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여당 반대로 증인에서 빠졌다.
사전투표 공방, 그리고 247만 표
청문회를 하루 앞둔 13일에도 움직임이 있었다. 2차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사전투표 제도의 존폐를 둘러싼 공방이 격화됐다.
같은 날 재검표 계획도 드러났다. 중앙선관위가 서울 송파구 투표지 247만여 장을 전량 육안으로 재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정당 참관인 입회 아래 진행하고, 전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공개한다는 방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Q&A로 짚어보기
Q1. 애초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국정조사까지 하게 됐나요?
발단은 투표용지 부족이다. 6·3 지방선거 개표 과정에서 용지가 모자라는 사태가 벌어졌다.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는 투표함 차량이 빠져나가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여기에 과거 의혹까지 겹쳤다. 2023년 선관위 고위직 자녀 채용 비리, 2022년 구로구 개표 오류가 다시 소환됐다. 국회는 결국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꾸렸다.
Q2. 90여 명이나 되는 증인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요?
전·현직 선관위원이 중심이다. 위철환 직무대행과 노태악 전 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여러 사안의 관련자가 더해졌다. 자녀 채용 비리의 박찬진 전 사무총장·송봉섭 전 사무차장, 구로구 개표 오류 당시 상임위원들, 행안부·국방부 선거사무 실무자, 잠실 충돌 현장의 경찰 관계자, 김태훈 검경합동수사본부장, 선관위 수의계약 업체 관계자 등이다.
Q3. 사전투표 폐지 논쟁은 왜 이렇게 뜨거운가요?
사전투표는 투표율을 높이려 도입한 편의 제도다. 그런데 이번 용지 부족 사태가 사전투표의 ‘수요 예측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면서 존폐 논쟁으로 번졌다.
중앙선관위원을 상근직으로 바꾸는 ‘상임화’ 문제도 얽혀 있다.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선관위 업무의 내실화를 위해 상임화는 불가피하다”며 전원 또는 절반 가까운 상임화를 제안했다. 반면 “책임 분산의 부작용과 업무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왔다.
Q4. 송파구 247만 표를 다시 세면 선거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나요?
그럴 가능성은 낮다. 이번 재검표는 서울시장·송파구청장 등 7개 선거의 투표지·투표록·개표상황표를 대상으로 한다. 분류기 대신 선관위 직원 440여 명이 한 장씩 육안으로 확인한다.
다만 선을 그은 대목이 있다. 중앙선관위는 “개표 결과 반영은 선거쟁송으로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검증은 국정조사 차원의 의혹 규명용이다. 법원 판단 없이는 당락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검증에는 약 15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산되며, 참관인 105명 안팎을 포함해 총 120여 명이 현장을 지켜본다.
Q5. 선관위의 ‘수고비 전용’ 논란은 무엇인가요?
윤건영 민주당 의원실이 선관위 자료를 받아 공개했다. 올해 투표용지 인쇄비 예산은 약 145억 원이었다. 이 중 82억 원만 집행됐고, 남은 돈 가운데 20억 원이 세목 조정을 거쳐 다른 데 쓰였다. 선거관리 직원들에게 주는 특별정려금, 즉 수고비 부족분을 메우는 용도였다.
주목할 점이 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자료가 여당 간사 쪽에서 나왔다. 예산 운용의 적절성 문제 제기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오는 셈이다.
양측의 시각
보수·우파 시각 (사전투표 축소·개혁론)
이쪽은 사전투표제 자체를 문제의 뿌리로 본다. 문상부 전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은 “수요 예측 실패의 근본 원인이 된 사전투표제를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 부정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며, 사전투표를 없애는 대신 본투표 기간을 2일로 늘리자는 절충안도 냈다.
국민의힘도 힘을 실었다. 박수민 의원은 이 제안을 “상당히 절묘한 지혜이자 균형점”이라 평가했다. 최보윤 의원은 사전투표 존치를 주장한 전문가를 “더불어민주당 추천 전문가”라며 몰아붙였고, 윤상현 위원장도 “선거 관리 제도 전반에 대해 말해달라”고 거들었다. 부정선거론을 연구해 온 류종열 칼럼니스트는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분들이 가장 요구하는 게 재검표”라며 관련 법 개정을 요구했다.
진보·좌파 시각 (사전투표 존치·신중론)
이쪽은 폐지 논의 자체를 경계한다. 선관위 개혁이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정치 공세로 본다.
하상응 서강대 교수는 편의성을 앞세웠다. “사람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제도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며 “사전투표 폐지는 이 맥락에서 논의되면 안 된다”고 했다. 김성회 민주당 의원은 전문가 의견을 정치적으로 평가하는 태도에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발했다. 상임화 확대에 대해서도 “책임 분산의 부작용과 업무 혼선”을 우려하는 신중론이 함께 나왔다.
전망: 왜 중요한가
먼저 14일 청문회에서 재검표 보고안이 의결될지가 관건이다. 통과되면 22일 결과보고서 채택에 앞서 247만여 장을 다시 세는 이례적 장면이 펼쳐진다.
이 검증은 개표 결과를 직접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결과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참고자료로 넘어간다. 형사적 책임 규명으로 이어질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사전투표 논쟁도 남는다. 국정조사 결론과 무관하게 다음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개정 논의로 옮겨붙을 수 있다. 결국 관건은 하나다. 선관위 신뢰 회복이 실제 제도 개혁으로 갈지, 아니면 정쟁의 소재로만 소모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