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사 급거 귀국 뒤엔 쿠팡이 있다
타계 직전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한국 좌파 정부가 미국 기업을 표적 삼는다'고 쓴 지 며칠 만에,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가 급히 서울로 돌아온다. 개인정보 유출에서 불거진 '쿠팡 사태'가 한미관계의 뇌관이 되고 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X(옛 트위터)에 짧은 글을 남겼다. “한국의 좌파 정부가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표적 삼고 있다.”
그가 겨눈 과녁은 한 이커머스 기업이었다. 쿠팡이다.
그리고 며칠 뒤인 7월 14일,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가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슨 일인가
이례적인 일시 귀국
외교부가 14일 발표했다. 강경화 주미한국대사가 15일부터 19일까지 일시 귀국한다는 것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의 지시로, 한미 관계 전반을 유관 부처들과 협의하기 위해서다.
협의 대상은 여럿이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른 대미 투자가 하나다. 우라늄 농축·재처리와 핵추진 잠수함 같은 안보 현안도 있다. 여기에 미국 조야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쿠팡 사안’이 더해진다.
이번 귀국은 이례적이다. 강 대사는 지난해 10월 한미 수교 이래 첫 여성 대사로 취임했다. 정상 방문이나 재외공관장 회의도 아닌데 업무 협의차 돌아오는 것은 드문 일이다.
배경에 놓인 ‘쿠팡 사태’
배경에는 이른바 ‘쿠팡 사태’가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불거진 문제다. 이것이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논란으로 번지며 한미 관계에 이상 조짐을 냈다.
미국 의회도 움직였다. 이달 초 짐 조던 공화당 의원이 위원장인 하원 법사위가 중간 보고서를 냈다. 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차별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백악관은 한발 더 나갔다. “이재명 정부가 쿠팡을 표적 삼고 있다”며 “불공정 관행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Q&A로 짚어보기
Q1. ‘쿠팡 사태’란 정확히 무엇인가?
발단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다. 유출된 정보가 담긴 노트북을 쿠팡이 중국에서 회수했다.
이 과정을 두고 미국 의회 일각이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나 정보기관이 개입했느냐는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대통령실은 “어떤 지시·명령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Q2. 미국 의회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사했나?
하원 법사위는 올해 2월 소환장을 발부했다. 대상은 해럴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였다. 이를 통해 쿠팡과 한국 정부 사이의 통신 기록 수천 건을 받았다.
조사에 밝은 의회 고위 관계자는 경고도 했다. 한국 정부가 보고서를 ‘쓸모없는(meritless)’ 것으로 일축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Q3. 미국 정부·의회 인사들의 반응은 어느 정도인가?
백악관 성명만이 아니다.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국무부 동아태 라인 당국자들이 잇달아 우려를 표했다.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사망 직전 같은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개입’이 임박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Q4. 한국 정부는 왜 지금 대사를 불러들이나?
강 대사는 대미 외교 최일선에 있다. 그래서 산업통상부·기획재정부·국방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긴밀히 협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투자 압박도 커지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 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고 공개 발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대응 방향을 논의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Q5. 지금까지 실무 논의는 얼마나 진전됐나?
더디다. 한미는 지난해 11월 외교·안보·통상을 망라한 팩트시트를 발표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서야 이행 실무 그룹을 꾸렸다.
지난 6월 엘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 담당 차관의 방한을 계기로 킥오프 회의는 열렸다. 하지만 후속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양측의 시각
보수·우파의 시각
백악관과 하원 공화당,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트럼프 행정부에 가까운 인사들의 판단은 분명하다. 쿠팡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대응을 미국 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표적 조치’로 본다.
이들은 개인정보 유출 처리 과정에서 한국 정부·정보기관의 개입을 의심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 한미 경제 관계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측 대응 체계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 주체가 화해와 출구 모색 의지가 담긴 메시지를 대사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외교부를 넘어 안보실 등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진보·좌파의 시각
국가정보원과 대통령실은 개입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트북 회수 과정에 “어떤 지시·명령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이런 입장이다. 쿠팡 사안은 정부의 ‘표적 조치’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의 개인정보 유출·처리 문제다. 미국 측의 문제 제기가 실체보다 과장돼 있다는 것이다.
정부 안에는 다른 인식도 깔려 있다. 미국 의회·행정부의 잇단 압박이 사실관계 확인보다 정치적 파장에 기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전망: 왜 중요한가
우선 관심사는 실무 협의다. 반년 넘게 후속 일정조차 못 잡은 한미 협의에 강 대사의 귀국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한국 정부 내부 조율도 변수다. 쿠팡 사태의 출구를 놓고 청와대 정책·안보 라인 간에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백악관의 태도가 관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그레이엄 의원까지 문제 삼았던 사안이다. 그의 타계 이후 이 사안이 어떻게 이어질지, 반도체 투자 압박과 맞물려 한미 경제·안보 협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