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셋뿐인 회사가 선관위와 66건을 계약했다
선관위 전직 간부와 그의 아내, 아들이 얽힌 세 회사가 175억 원어치 일감을 받았다.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터진 폭로를 정리했다.
14일 국회 청문회장. 한 의원이 손에 든 자료를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직원이 단 3명뿐인 회사였다. 그런데 이 작은 업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맺은 계약은 66건, 금액으로는 30억 원에 가까웠다. 회사 대표는 선관위에서 정당과장을 지낸 전직 간부였다. 이날 공개된 자료는 그 간부의 가족이 얽힌 세 회사를 겨눴다.
무슨 일인가
청문회장에서 나온 폭로
국회에는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꾸려져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 투표용지가 모자랐던 사태를 조사하려고 국회가 만든 특별위원회다. 줄여서 국조특위라 부른다.
이날 청문회에서 소속 위원인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자료를 공개했다. 중앙선관위 등에서 받은 자료라고 했다. 투표용지 사태를 다루던 자리에서, 전혀 다른 의혹이 튀어나온 셈이다.
전직 간부와 가족, 그리고 세 회사
자료의 핵심은 ‘전관 특혜’ 의혹이다.
선관위 정당과장을 지낸 전직 간부가 있다. 두 매체 모두 실명 대신 이니셜로만 표기했다. 이 사람과 그의 배우자, 아들이 대표이사나 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회사가 3곳이다. 이 세 회사가 선관위와 맺은 계약은 모두 103건, 금액은 175억5323만 원에 달했다.
문제는 계약 방식이다. 103건 가운데 90건이 수의계약(경쟁입찰 없이 특정 업체와 직접 맺는 계약)이었다. 공개 경쟁을 거치지 않고 특정 회사에 일감이 몰린 것이다.
회사별로 뜯어보면
첫 번째 회사. 전직 간부 본인이 대표이사다. 직원은 3명뿐인 작은 업체다. 이 회사가 선관위와 맺은 계약은 66건, 29억7520만 원이었다. 이 가운데 64건이 수의계약이었다. 6·3 지방선거에서 논란이 됐던 ‘반투명 관내 사전투표함’을 선관위에 납품한 곳도 이 회사다.
두 번째 회사. 전직 간부의 배우자가 대표이사다. 선관위와 9건, 4억945만 원 규모로 계약했고 그중 8건이 수의계약이었다. 이 회사는 첫 번째 회사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었다. 전직 간부 본인이 이 회사의 감사로 등재된 이력도 있다.
세 번째 회사. 전직 간부가 사내이사로 참여한 곳이다. 세 회사 중 계약 규모가 가장 크다. 28건에 141억6858만 원. 이 가운데 18건이 수의계약이었다.
선관위의 반응
폭로가 나오자 위철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직무대행이 답했다. “철저하게 개혁해서 시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직 공무원들은 어떤 형식이든지 계약에 관여하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Q&A로 짚어보기
Q1. 수의계약이 왜 문제가 되나요?
수의계약은 경쟁입찰을 거치지 않고 특정 업체와 바로 맺는 계약이다. 절차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소액이거나 특수한 물품일 때 쓴다.
문제는 공정성이다. 여러 업체가 경쟁하지 않으니, 마음만 먹으면 특정 회사에 일감을 몰아줄 수 있다. 이번 사안에서 90건이 수의계약이었다는 점이 의혹의 핵심인 이유다.
Q2. ‘반투명 사전투표함’은 왜 언급되나요?
이 투표함은 6·3 지방선거 때 논란이 됐던 물건이다. 안이 비쳐 보이는 반투명 재질이었다.
그 투표함을 납품한 회사가 바로 전직 간부 본인이 대표로 있는 곳이었다. 투표 관리의 신뢰 문제와 전관 특혜 의혹이 한 회사에서 겹친 셈이다.
Q3. 세 회사가 정말 서로 연결돼 있나요?
공개된 자료만 놓고 보면 정황은 뚜렷하다. 전직 간부는 첫 번째 회사의 대표이고, 배우자는 두 번째 회사의 대표다. 세 번째 회사에는 사내이사로 참여했다.
게다가 첫 번째와 두 번째 회사는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었다. 전직 간부는 배우자 회사의 감사를 맡은 적도 있다.
Q4. 이 폭로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이 있나요?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폭로는 투표용지 사태를 조사하는 국조특위 청문회 자리에서 나왔지만, 내용은 별개의 계약 특혜 의혹이다.
다만 두 사안 모두 선관위의 신뢰라는 같은 뿌리를 건드린다. 선거 관리 기관의 투명성이 도마에 오른 상황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양측의 시각
특검을 요구하는 목소리
폭로 당사자인 주진우 의원은 이 구조를 ‘카르텔’로 규정했다. 그는 “전관과 가족회사에 일감까지 몰아준 ‘선피아(선관위+마피아) 카르텔’의 실체”라고 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특검이다.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 만큼 즉시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른 자리에서는 “선관위가 가족회사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선관위 카르텔이 작동하니까 특검이 불가피하다”고도 말했다. 자체 조사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선관위 측의 대응
선관위는 특검 요구에 직접 맞서지는 않았다. 대신 자체 개혁을 앞세웠다.
위철환 직무대행은 “철저하게 개혁해서 시정하겠다”고 답했다. 핵심은 전직 공무원의 계약 관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전직 공무원들은 어떤 형식이든지 계약에 관여하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했다. 문제를 인정하되, 외부 수사보다 내부 시정으로 풀겠다는 태도다.
전망: 왜 중요한가
먼저 특검 요구가 실제 특검 도입으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주 의원은 증거인멸을 이유로 즉시 실시를 주장했다. 이 요구가 국회에서 얼마나 힘을 받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선관위의 자체 개혁 약속도 시험대에 오른다. 위 직무대행은 전직 공무원의 계약 관여를 막겠다고 했다. 이 다짐이 구체적인 제도로 이어질지, 말에 그칠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무엇보다 이 사안은 선거를 관리하는 국가기관의 신뢰 문제다. 투표용지 사태에 이어 계약 특혜 의혹까지 겹치면서, 선관위를 향한 검증의 강도는 당분간 더 세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