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잔해 앞 어머니의 절규 “딸을 잃었다”

규모 7.2와 7.5 지진이 베네수엘라를 덮친 뒤 3주, 사망자는 4천 명을 넘겼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운 로드리게스 정부의 재난 대응을 두고 유가족의 분노가 터져 나온다.

#베네수엘라#트럼프 행정부#지진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앞. 딸을 잃은 어머니 다멜리 야네트 디아즈가 한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상대는 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의 서른여섯 살 아들이자 국회의원인 니콜라스 마두로 게라였다.

“나는 부엌을 잃은 게 아니다. 딸을 잃었다!”

“당신들 전부 체포돼야 한다. 이건 부주의였고, 당신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노르웨이 방송사가 찍은 이 장면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졌다. 주변 시민들은 외신 기자들에게 “계속 찍으라”고 외쳤다. 지진이 베네수엘라를 덮친 지 3주, 이 나라의 분노는 정확히 한 곳을 겨누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두 번의 지진, 4천 명이 넘는 죽음

2026년 6월 24일, 규모 7.2와 7.5의 지진이 1분도 안 되는 간격으로 베네수엘라 북부 해안을 강타했다. 라과이라주가 특히 심하게 무너졌고, 수도 카라카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방출된 에너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한 방재 전문가는 “히로시마 원폭 240개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터졌다”고 말했다. 21세기 최악의 재난으로 꼽히는 아이티 지진(규모 7.0)보다 훨씬 강력했다는 것이다.

사망자 수는 지금도 늘고 있다. 초기 집계는 최소 4,333명 사망, 약 1만 7천 명 부상이었다. 정부는 7월 12일경 공식 사망자를 4,490명으로 올렸다. 많은 시신이 아직 잔해에서 수습되는 중이라, 숫자는 더 커질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지은 아파트가 통째로 무너졌다

붕괴의 상징이 된 곳은 라과이라주 카라바예다의 OPPE 25다. 정부가 지은 서민 주택 단지로, 12층짜리 타워 여러 동이 서 있었다.

이 단지에서 7개 동 중 2개 동이 완전히 무너졌다. 나머지 5개 동도 심하게 부서졌다. 인근의 OPPE 27, OPPE 33 같은 다른 정부 단지도 함께 붕괴했다.

부실시공 의혹이 곧바로 번졌다. 정부는 이를 반박했다. 무너진 건물 중 상당수는 정부 주택이 아니라 민간 상업 개발 건물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엔 삽보다 소총이 더 많다”

현장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자 가브리엘 곤살레스(45)는 지진 2주 뒤에도 스물두 살 아들 다니엘과 장모 에스메랄다를 찾지 못했다. 정작 자신은 아내와 함께 잔해 속에 24시간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그는 말했다. “우리에겐 정부가 없다. 여기서 아무도 못 봤다. 주지사도, 시장도 못 봤다.”

칠레에서 어머니를 찾으러 날아온 밀라그리 로드리게스 과니레의 말은 더 아팠다. “여기엔 곡괭이나 삽보다 소총이 더 많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곡괭이와 삽이다.” 딸을 잃은 예순다섯 요리사 로베르토 뒤퓌는 “이 쓰레기 같은 자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격분했다.

이 사건의 배경

한국 독자에게 베네수엘라의 정치 지형은 낯설다. 지금의 분노를 이해하려면 이 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부터 봐야 한다.

역사적 배경, 볼리바르 혁명에서 경제 붕괴까지

우고 차베스는 1999년 집권해 “볼리바르 혁명”을 내세운 사회주의 정부를 세웠다. OPPE 25 같은 서민 주택 정책은 그 시절 지지의 원천이었다.

차베스가 2013년 사망한 뒤,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가 권력을 이었다. 그러나 마두로 치하에서 유가 폭락, 부패, 미국의 제재가 겹치며 경제가 무너졌다. 초인플레이션이 덮쳤고, 수백만 명이 나라를 떠났다. 2024년 대선에서는 마두로가 야권의 승리를 훔쳤다는 시각이 널리 퍼졌다. 그 야권 지도자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다.

이해관계 구도, 트럼프가 마두로를 끌어내리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다. 2026년 1월 3일, 그의 지시로 미군 특수부대가 마두로를 나포하는 작전을 감행했다.

마두로는 지금 뉴욕의 한 교도소에 마약 밀매 혐의로 갇혀 있다. 본인은 혐의를 부인한다. 트럼프는 마두로의 전 부통령이던 델시 로드리게스를 대행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 로드리게스를 두고 트럼프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치켜세웠고, 그가 미국 석유·광업 기업의 베네수엘라 진출을 돕고 있다고 알려졌다.

한때 “반제국주의의 요람”으로 불리던 나라가, 이제는 사실상 미국의 “보호령”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가 워싱턴에서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통치하는 “실질적 총독” 역할을 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왜 지금 터졌나

그리고 6월 24일, 지진이 왔다. 4천 명이 넘는 목숨이 사라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후원해 세운 로드리게스 정부의 재난 대응이 느리고 무능했다는 분노가 확산됐다. 이 분노는 로드리게스 개인을 넘어, 미국이 개입해 만든 이 체제 자체의 정당성으로 번지고 있다.

Q&A로 짚어보기

Q1. 델시 로드리게스는 누구인가요?

마두로 정부의 전 부통령이다. 2026년 1월 마두로가 미군에 붙잡힌 뒤,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 속에 대행 대통령이 됐다.

지금 그는 재난 대응 실패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자신을 세운 미국은 여전히 그를 지지한다.

Q2. 마두로의 아들은 왜 유가족과 마주쳤나요?

니콜라스 마두로 게라는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현직 국회의원이다. 지진 현장에서 딸을 잃은 어머니 디아즈의 절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는 “이해하고 지지한다. 그 고통은 상상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부 주택이 제대로 지어졌느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른다. 나는 건축가가 아니라 경제학자다.”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Q3. 사망자 수는 왜 계속 달라지나요?

집계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최소 4,333명이었다가, 이후 공식 집계가 4,490명으로 올랐다.

많은 시신이 지금도 잔해에서 수습되고 있다. 최종 숫자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Q4. 미국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백악관은 비판에도 로드리게스 정부를 계속 지지하고 있다. 재난 대응을 돕겠다며 약 1천 명의 미군 병력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했다.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의 베네수엘라 진출을 이 개입의 성과로 내세워 왔다.

양측의 시각

정부와 백악관을 옹호하는 시각

로드리게스는 자신을 향한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이 비판이 “실험실에서 조작된 사악한 언론 캠페인”이라고 일축했다. 자신의 정부와 군이 “지치지 않고” 구호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대응이 늦은 이유도 해명했다. 라과이라의 고위 공무원 다수가 지진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부실시공 의혹에 대해서는 무너진 건물 상당수가 민간 상업 개발이었다며 정부 주택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백악관의 입장도 같은 선상에 있다. 비판에도 로드리게스 정부를 계속 지지하며 미군 1천 명을 보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독재자 마두로를 축출하고 미국 기업의 진출까지 이끈 것을 이 개입의 정당성으로 내세워 왔다.

유가족과 비판자들의 시각

반대편의 언어는 훨씬 날카롭다. 유가족과 주민들은 정부 대응을 “무책임”과 “굼뜸”으로 규정한다. 곤살레스의 “정부가 없다”는 말, 로드리게스 과니레의 “소총보다 삽이 필요하다”는 말이 그 정서를 압축한다.

로드리게스의 처신은 불을 키웠다. 그는 유가족과의 고위급 만남은 피한 채 지역 군기지를 찾아 파견 병력을 격려했다. 그 자리에서 정부와 군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비참한 자들은 파묻힐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시신을 수습 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전문가의 진단은 더 무겁다. 한 구조공학자 출신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금은 마두로 정권을 비판한 뒤 망명 중이다. 그는 “완전한 인명 피해 제로는 불가능했겠지만, 피해는 훨씬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베네수엘라 정부는 완전히 실패했고, 지지는 갈수록 줄고 있다”며 “‘혁명’을 내세운 수사는 허울일 뿐이고, 그들의 동기는 결국 돈과 권력”이라고 비판했다. 재난 이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63%가 로드리게스의 대응에 반대했고, 절반 가까이는 재건보다 조기 대선이 더 급하다고 답했다.

전망: 왜 중요한가

당장의 관전 포인트는 로드리게스 정부가 이 분노를 감당할 수 있느냐다. 63%의 반대 여론과 조기 대선 요구가 어디로 흐를지가 첫 갈림길이다. 다만 지진이 오히려 대선 요구 압력을 낮출 수 있다는 관측도 있어, 방향은 아직 열려 있다.

더 큰 질문은 미국을 향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를 끌어내리고 이 정부를 세웠다. 독재자는 치웠지만, 정작 재난을 감당할 정부는 세우지 못했다는 비판이 여기서 나온다.

지켜볼 지점은 분명하다. 사망자 집계가 어디까지 오를지, 백악관이 로드리게스에 대한 지지를 언제까지 유지할지, 그리고 “보호령”이라는 말이 붙은 이 나라에서 재건과 정치 일정이 어떻게 맞물릴지다. 잔해 앞에서 터진 한 어머니의 절규는, 이제 한 정권을 넘어 한 개입 전체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 참고 소스

이 기사는 아래 3개 보도를 교차 확인해 종합했습니다. 국제정세 기사는 해외 언론만 참고합니다.

  1. Guardian World 'God is punishing the politicians': anger at earthquake response grows in Venezuela
  2. Guardian World A revolution in ruins: fury amid the rubble of a housing project in quake-hit Venezuela
  3. VOA Korea 베네수엘라 지진의 죽음과 파괴 속에서 보이는 몇 줄기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