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을 연구한 미국인이 왜 중국에 갇혔나
지하 핵실험을 지진파로 찾아내는 미국인 과학자가 베이징 공항에서 붙잡혀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억류 600일이 넘도록 그는 북한 핵실험 연구를 두고 100번 넘게 심문받았다.
2024년 11월 5일, 베이징 국제공항.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한 남자가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에게 붙잡혔다.
그의 이름은 첸유린(Chen Youlin). 54세의 미국인 지진학자다. 땅이 흔들린 흔적, 곧 지진파를 읽어 지하에서 몰래 터뜨린 핵실험을 찾아내는 전문가다.
그날 이후 그는 사라졌다. 600일이 넘도록 아내는 남편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무슨 일인가
공항에서 붙잡힌 지진학자
첸유린은 중국에서 태어나 2011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산다.
그가 베이징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친척을 만나고, 대학 두 곳에서 강연을 하는 것. 일정을 마치고 보스턴행 비행기를 타려던 참에 체포됐다.
혐의는 무거웠다. 2025년 5월 1일, 중국 당국은 그를 간첩 혐의로 정식 기소했다. 다만 아직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중국법상 간첩죄는 장기 징역형부터 무기징역, 최악의 경우 사형까지 갈 수 있다.
무엇을 연구했길래
첸의 전공은 지하 핵실험 탐지다. 지진파 신호를 분석해 그것이 자연 지진인지, 핵폭발인지 가려내는 일이다.
그가 특히 파고든 대상은 북한이었다. 2020년 12월에 낸 논문에서 그는 북한이 지금까지 벌인 6차례 핵실험의 규모를 분석했다. 지진과 핵실험의 지진파 신호를 어떻게 구분하는지도 다뤘다.
이 논문은 비밀문서가 아니다. 미 국무부 군축국의 의뢰로 작성돼 공개 승인을 받았다. 연구비는 미 국무부와 공군연구소가 댔다. 중국 학계 협력자들과 함께, 공개된 중국 데이터를 써서 만들었다. 지금도 온라인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는 미국 정부 계약업체에서 일했다. 하지만 미국의 비밀취급인가를 받은 적도, 기밀 업무를 한 적도 없다. 유가족을 돕는 인질 옹호단체 글로벌리치(Global Reach)의 에릭 렙슨이 밝힌 내용이다.
600일 넘는 억류
그가 갇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내를 통해 알려졌다. 역시 지진학자인 아내 롱위팡(Rong Yufang)의 주장이다.
초기에는 딱딱한 의자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했다고 한다. 서 있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하는 것도 금지됐다. 당뇨 같은 지병 약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변호사를 만난 것은 체포 후 13개월이 넘어서였다. 그사이 그는 자신의 북한 핵실험 연구를 두고 100차례 넘게 심문받았다고 한다. 건강이 나빠져 체중이 3040파운드(약 1318kg) 넘게 빠졌다는 것이 아내의 주장이다.
워싱턴이 나섰다
미국 정부도 이 사건을 무겁게 보기 시작했다. 미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2026년 3월 19일, 첸을 “부당하게 억류된” 미국인으로 공식 지정했다. 현재 중국에 갇힌 미국 시민 가운데 이 지정을 받은 사람은 첸이 유일하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 지정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외교적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였다고 아내는 전했다.
정상 간 대화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한다.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5월 베이징 국빈 방문 때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첸의 억류 문제를 직접 꺼냈다고 아내에게 전했다. 시 주석은 “살펴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 대화를 직접 확인해주지 않은 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와 시진핑의 관계는 여전히 견고하며 첸의 억류는 미중 사이의 여러 현안 중 하나라고만 했다.
중국의 입장은 짧고 단호했다. 중국 외교부는 7월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 사건 질문에 “사법당국은 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다”고 답했다. 대변인 린젠은 “이른바 부당 억류라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사건의 배경
핵실험을 둘러싼 미중 신경전
왜 지진학자 한 명이 두 강대국 사이의 문제가 됐을까. 배경에는 핵실험을 둘러싼 오랜 신경전이 있다.
미국과 중국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을 비준하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자발적 유예를 지켜왔다.
그런데 2020년 6월,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이 신장의 뤄부포(Lop Nur) 기지에서 비밀리에 지하 핵실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근거 없는 정치적 주장이라며 부인했다. 첸이 체포된 2024년 11월은 이 논쟁이 이어지던 와중이었다.
이 의혹은 최근 다시 떠올랐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2월, 중국이 2020년 6월 뤄부포에서 실시한 저강도 지하 핵실험을 특수 기법으로 숨기려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처음 제기된 시점을 두고는 설명이 조금씩 엇갈린다. 중국은 이런 핵실험 의혹 자체를 정치적 동기에서 나온 주장이라며 계속 부인해왔다.
왜 하필 지진학자인가
미국 측이 의심하는 지점은 여기다. 첸의 전문지식이 중국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지하 핵실험을 숨기는 기법이 있다.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렙슨은 중국이 첸의 전문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 은폐 기법에 대한 대응 역량을 키우려는 데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에릭 렙슨은 유가족을 돕는 인질 옹호단체 글로벌리치 소속으로, 첸 가족을 자문하고 있다. 지진파로 핵실험을 잡아내는 첸의 지식이, 거꾸로 핵실험을 감추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다른 걱정은 중국의 법이다. 인권단체들은 중국의 국가기밀보호법이 당국에 지나치게 넓은 권한을 준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공개돼 있던 정보라도 나중에 “국가기밀”로 소급 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개 자료를 다룬 사람도 처벌 위험에 놓인다.
왜 지금 세상에 알려졌나
첸은 거의 2년째 갇혀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이 침묵을 깬 이유가 있다. 베이징이 석방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자,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공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2026년 9월 시진핑의 워싱턴 방문이 다가오고 있다. 첸의 사건은 그 방문을 앞둔 외교 현안으로 남을 전망이다.
첸의 사연이 드러나기 한 달 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중국이 미얀마 연구 싱크탱크 소속 미국인 학자 민진(Min Zin)의 체포를 공식 확인한 것이다. 베이징은 민진에게도 간첩 혐의와 국가안보 위해 혐의를 걸었다.
Q&A로 짚어보기
Q1. 첸유린은 무슨 일을 했나요?
지진파로 지하 핵실험을 찾아내는 지진학자다. 자연 지진과 핵폭발의 신호를 구분하는 것이 전문 분야다.
특히 북한 핵실험을 연구했다. 북한의 6차례 핵실험 규모를 분석한 논문을 2020년에 냈다.
Q2. 그의 연구는 기밀이었나요?
아니라는 것이 유가족과 옹호단체의 설명이다. 문제의 논문은 미 국무부 의뢰로 공개 승인을 받았고, 지금도 온라인에 올라 있다.
연구는 공개된 중국 데이터를 바탕으로 중국 학계와 함께 이뤄졌다. 첸은 미국의 비밀취급인가를 받은 적도 없다고 렙슨은 밝혔다.
Q3. 미국 정부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요?
국무장관 루비오가 3월에 그를 “부당 억류” 미국인으로 지정했다. 중국 내 미국인 중 유일한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베이징 방문 때 시진핑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했다고 아내에게 전달됐다. 다만 이후 뚜렷한 조치는 없었다.
Q4. 중국은 왜 그를 붙잡아 두나요?
공식 입장은 사법 절차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사안이며 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이다.
미국 측은 다른 의도를 의심한다. 첸의 핵실험 탐지 지식을, 거꾸로 자국의 핵실험 은폐 역량을 키우는 데 쓰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중국은 핵실험 의혹 자체를 부인한다.
양측의 시각
미국 정부와 유가족의 시각
미국 측은 명백한 부당 억류라고 본다. 첸의 연구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중국 학계와 투명하게 협력한 것이고, 기밀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아내 롱위팡은 이렇게 호소했다. “혐의는 잘못됐고, 그가 해온 공개적이고 협력적인 연구의 성격과도 맞지 않는다.” 그러면서 “600일 넘게 남편과 이야기하지 못했고 건강이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바란다고 말하는 바로 그 민간 교류를 하고 있었다.”
의회도 압박에 가세했다. 매사추세츠주 민주당 상원의원 에드 마키는 루비오 장관에게 첸을 “부당 억류”로 지정하라고 요구하는 초당적 서한을 주도했다.
마키는 이렇게 밝혔다. “베이징의 첸에 대한 처우는 미중 파트너십을 훼손했고, 다른 학자들이 중국 동료와 협력하는 것을 위축시킬 수 있다.” 그는 “이 부당한 억류에 관심이 늘어나면 중국 정부가 옳은 일, 즉 첸을 석방하도록 압박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 정부의 시각
중국은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법당국이 법에 따라 처리하고 있으며, “부당 억류”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대변인 린젠의 말이 이를 압축한다. “이른바 부당 억류라는 것은 없다.”
첸이 간첩 혐의로 정식 기소된 사안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미국이 제기해온 핵실험 의혹에 대해서도, 중국은 근거 없고 정치적 동기에서 나온 주장이라며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전망: 왜 중요한가
가장 먼저 지켜볼 것은 9월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시진핑의 워싱턴 방문이 다가온다. 첸의 사건이 그 자리에서 다시 거론될지, 아니면 여러 현안에 묻힐지가 관건이다.
학계에 미칠 파장도 변수다. 공개된 자료로 중국 동료와 협력한 연구자가 간첩 혐의로 갇혔다는 사실은, 다른 학자들에게 신호가 된다. 마키가 우려한 “위축 효과”가 얼마나 번질지 지켜볼 대목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미국인 억류가 미중관계의 지렛대가 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백악관 부대변인 애나 켈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 억류 미국인 송환을 우선 과제로 삼아, 현 임기에 100명 넘는 미국인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그 명단에 첸의 이름이 오를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