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쿠팡, 생각보다 훨씬 오래 간다”
서울 외교부 청사로 들어온 강경화 주미대사가 쿠팡 사태를 두고 생각보다 훨씬 오래 갈 이슈라고 했다. 미 하원 보고서와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의 쿠팡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한미관계가 흔들린다.
7월 15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워싱턴에서 밤새 날아온 강경화 주미대사가 취재진 앞에 섰다. 기자들이 던진 첫 질문은 하나로 모였다. 쿠팡.
강 대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오래 가는 이슈.”
이커머스 기업 하나를 둘러싼 갈등이, 한국의 최고위 대미 외교관을 서울로 불러들였다.
무슨 일인가
청사 앞에서 강경화가 한 말
강 대사는 조현 외교부 장관의 지시로 15일 일시 귀국했다. 19일까지 서울에 머문다.
그는 쿠팡 문제를 “관리”하겠다고 했다. “그 이슈는 그 이슈대로 관리하면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 담긴 합의 사안들의 진전을 만들기 위해 여러 레벨에서 협의 중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느냐는 물음에는 말을 아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없다”고만 했다. “계속 협의를 이어 나가고 있다”는 답이 전부였다.
대미 투자 속도를 높이라는 압박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산업통상부와 미 상무부가 협의를 이어가고 있고, “상업적 합리성을 충족하는 프로젝트를 발굴하려다 보니 조금 더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왜 지금 서울로 왔나
귀국 이유를 그는 ‘현장감’으로 설명했다. “한미 간에는 워낙 관계가 촘촘해 이슈도 많다”고 했다. DC에 있는 사람과 외교부 본부에 있는 사람의 현장감이 다르니, 본부의 생각은 듣고 현장의 감각은 전하러 들어왔다는 것이다.
일정은 빡빡하다. 이날 조 장관과 비공개로 만나 현안을 보고했다. 외교부 1·2차관, 북미국 등 한미 관계 부서들과도 회의했다. 16일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재하는 한미 관계 현안 회의에 참석한다.
청와대는 이번 귀국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양국 관계 발전 방안에 대한 공관장의 건의나 솔직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목적”이며, 다른 나라 주재 대사들의 일시 귀국도 같은 차원에서 진행돼 왔다는 설명이다.
불씨가 된 하원 보고서
귀국 지시가 떨어진 시점이 묘하다. 지난주, 미 연방하원 법사위원회가 관련 보고서를 공개한 직후였다.
보고서의 요지는 이렇다.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 쿠팡을 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쿠팡 국내법인 임시대표 해럴드 로저스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 정부의 조치를 지난해 한미 무역합의(미국 기업 비차별 약속) 위반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무역법 301조 대응을 촉구했다.
숫자도 붙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조사 40건 중 33건이 개인정보 유출과 무관했다고 주장했다. 자료 요구는 4229건, 직원 면담은 652회에 달했다고 했다. 국정원이 지난해 12월 쿠팡과 230여 차례 통화하며 유출 데이터가 담긴 기기를 중국에서 회수하도록 지시했다는 쿠팡 측 주장도 담겼다.
압박은 한 갈래가 아니다. 한국 정부의 차별 조치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미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국방수권법(NDAA) 개정안도 발의됐다. 백악관 당국자는 “이재명 정부는 쿠팡을 콕 찍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월엔 하원 공화당 의원 54명이 강 대사 앞으로 미국 기업 차별 규제를 멈추라는 서한을 보냈다.
쿠팡 하나를 두고 백악관과 의회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쿠팡만이 아니다. 정보통신망법 시행, 그리고 안보 협의 지연까지 겹쳤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핵잠수함 건조를 둘러싼 협상은 지난달 첫 회의를 연 뒤 2차 협상 시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쿠팡 사태, 어디서 시작됐나
개인정보 3755만명, 그리고 미국 국적 총수
발단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었다. 한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를 조사해 3755만명의 정보가 새어나갔다고 결론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29일 쿠팡의 ‘동일인’(그룹 총수)을 기존 쿠팡 법인에서 김범석 의장으로 바꿨다. 김 의장은 미국 국적이다. 공정위가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첫 사례였다. 김 의장의 동생 김유석씨가 쿠팡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한 정황이 근거가 됐다.
법원은 이 처분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적법한지는 본안 소송에서 가려진다. 쿠팡과 미국은 이 조치를 “차별적 규제”로 본다.
트럼프도 쿠팡 주식을 샀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미국 정부윤리청(OGE) 재산신고 공개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자산운용사를 통해 쿠팡 주식을 18차례 사고판 것으로 나타났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변호사였던 2024년 쿠팡에서 1만달러(약 1500만원)의 강연·자문료를 받은 것으로 신고됐다. 앨리슨 후커 국무부 정무차관도 취임 전 쿠팡에 컨설팅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은 것으로 신고됐다.
쿠팡의 씀씀이도 드러났다. 올해 1분기에만 백악관·의회·USTR을 상대로 109만달러(약 17억원)를 로비에 썼다.
쿠팡을 감싸는 워싱턴 인사들과 쿠팡 사이에 돈이 오간 기록이 남아 있었다.
Q&A로 짚어보기
Q1. ‘동일인’ 지정이 왜 그렇게 민감한가?
동일인은 대기업집단의 실질적 총수를 뜻한다. 지정되면 총수 본인과 친족이 가진 회사 정보를 공정위에 신고해야 하는 등 규제 대상이 넓어진다.
쿠팡의 동일인이 미국 국적 김범석 의장으로 바뀌면, 미국인이 한국의 총수 규제를 받는 셈이 된다. 미국이 “차별”이라며 반발하는 지점이 여기다. 반면 한국 정부는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지정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Q2. 하원 보고서와 한국 정부의 숫자가 왜 이렇게 다른가?
유출 규모부터 어긋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3755만명 유출로 결론냈다. 그러나 미 하원 보고서는 전직 직원이 저장한 계정 약 3000개로만 규모를 좁혀 부각했다.
여당은 이를 “의도적 축소”라고 본다. 3755만명짜리 사건을 3000개로 줄여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Q3. 강 대사의 귀국은 이례적인가?
청와대는 아니라고 한다. 공관장이 본부에 솔직한 의견을 전하는 통상적 절차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점이 시선을 끈다. 하원 보고서가 공개된 직후, 장관이 직접 지시해 대미 외교 수장을 서울로 불러들였다.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Q4. 지금 협의는 얼마나 진전됐나?
더디다. 강 대사 본인이 “조금 더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대미 투자는 산업통상부와 미 상무부가 협의 중이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다. 안보 협의는 2차 협상 날짜조차 잡지 못했다.
양측의 시각
여권의 시각
민주당은 미 하원 보고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보고서가 “쿠팡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국문·영문 반박 자료를 만들어 백악관과 주한 미국대사관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쿠팡이 유출 규모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는 지적도 더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여당 간사인 장철민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를 예고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쿠팡의 대미 로비 실태와 자료 반출 경위를 “끝까지 규명하겠다”며 “2라운드”를 벼렀다.
정부는 통상주권을 지키며 당당하고 끈질기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여권의 기조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야당의 시각
국민의힘은 화살을 정부로 돌린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이재명 정부는 ‘정부 입장을 충실히 전달 중’이라고 했고, 김민석 (당시) 국무총리 등이 수차례 방미해 설명했지만 씨알도 안 먹힌 것.”
그는 이 사안을 쿠팡 한 곳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쿠팡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이재명 정부 외교력의 수준이 떨어졌고, 한미동맹이 그만큼 멀어졌다는 뜻.” 정부의 대응이 안일했고, 그 대가로 동맹이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전망: 왜 중요한가
강 대사는 나흘 뒤 워싱턴으로 돌아간다. 그가 서울에서 챙긴 ‘본부의 생각’이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어떻게 풀릴지가 첫 관전 포인트다.
지켜볼 지점은 셋이다. 첫째, 미국이 무역법 301조나 NDAA 개정으로 실제 압박 수위를 끌어올릴지다. 둘째, 법원 본안 소송에서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이 적법한지 어떻게 가려질지다. 셋째, 국정감사에서 쿠팡의 로비와 자료 반출 경위가 어디까지 드러날지다.
분명한 건 하나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 하나가 한미 통상과 안보 전반을 흔드는 뇌관이 됐다.
쿠팡을 “관리”하겠다던 강 대사의 말처럼, 이 이슈는 정말 그의 예상보다 오래 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