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방탄조끼가 뭐냐고 12살 아들이 물었다

미국 연방대법관 두 명이 7년 만에 의회에 나와 신변 위협의 실상을 증언했다. 방탄조끼를 본 아들의 질문부터 자택을 덮친 허위 신고 테러까지, 대법관들이 겪은 일이 낱낱이 공개됐다.

#미국 정치#트럼프 행정부#연방대법원

침실 문가에 12살 아들이 서 있었다. 아이의 눈은 엄마가 방금 집에 들고 온 물건에 꽂혀 있었다. “이게 뭐예요?”

방탄조끼였다. 미국 연방대법관인 엄마는, 그 순간 아이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일인가

7년 만에 의회에 선 대법관들

2026년 7월 14일 오전, 워싱턴 D.C.의 연방 하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장. 미국 연방대법관 두 명이 나란히 증언대에 섰다.

한 명은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로, 대법원 안에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다른 한 명은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했고, 진보 성향으로 꼽힌다.

대법원이 의회 증언을 위해 대법관을 보낸 건 2019년 이후 처음이다. 예산을 놓고 증언한 건 7년 만이었다. 그만큼 이례적인 자리였고, 이유가 있었다.

예산의 정체는 경호였다

대법원은 2027 회계연도 예산을 전년보다 10%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금액으로는 약 2070만 달러 증가다.

이 증액분의 대부분이 한 곳으로 간다. 1660만 달러가 대법관 경호 강화에 쓰인다. 대법관 개인 경호에만 대법원은 총 약 8900만 달러를 요청한 상태다.

왜 이렇게 늘었나. 케이건 대법관은 숫자 하나를 내놨다. 대법관을 겨눈 위협이 2026년 한 해에만 35% 늘었다는 것이다. 전년도 증가율은 25%였다. 최근 예산이 불어난 것은 거의 전부 경호 비용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아이들이 겪지 않아도 될 일

증언대에서 배럿 대법관은 사적인 장면을 꺼냈다. 방탄조끼를 집에 가져온 그날의 일이었다.

“열두 살 아들이 침실 문가에 서서 그게 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는 말을 이었다. “이 일을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방탄조끼가 무엇이고 제가 왜 그걸 입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처지로 저를 몰아넣을 줄은 몰랐습니다.”

배럿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 “이 일은 제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보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보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6주 전, 집으로 경찰이 몰려왔다

더 섬뜩한 일도 있었다. 배럿에 따르면 6주 전 그의 자택이 ‘스와팅’을 당했다. 스와팅은 누군가 허위로 신고해 무장 경찰을 남의 집에 출동시키는 테러 수법이다.

누군가 배럿의 집에서 총격이 벌어졌다고 거짓 신고를 했다. 10대 아들과 그 친구들이 경찰이 몰려온 거리를 가장 먼저 목격했다. 지역 경찰이 집을 급습할 뻔한 순간이었다.

이를 막은 건 대법원 자체 경호팀이었다. 배럿은 이렇게 증언했다. “집 밖에 대법원 경찰이 있어서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카운티 경찰을 만나 허위 신고였다고 설명해 준 덕분에, 경찰이 실제로 집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살해된 판사 아들의 이름으로 온 소포

배럿은 또 하나의 이름을 언급했다. 에스더 살라스 판사다.

살라스는 뉴저지주 연방지방법원 판사다. 2020년 한 변호사가 배달원으로 위장해 그의 자택을 찾아 총격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살라스 판사의 20세 아들이 숨졌고, 남편도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숨진 아들의 이름으로, 배럿을 비롯한 대법관들에게 익명의 소포가 배달되고 있다고 한다. 배럿은 이 소포들이 “겁을 주고 괴롭히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배경

역사적 배경: 스캘리아의 죽음이 남긴 구멍

대법관 경호가 지금처럼 강화되기 시작한 데는 계기가 있다.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죽음이다.

스캘리아는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었다. 2016년, 그는 경호원 없이 사냥 여행을 떠났다가 텍사스에서 사망했다. 이 일로 대법관 경호 체계에 큰 구멍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뒤 의회가 움직였다. 공화당 소속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대럴 이사와, 지금은 작고한 민주당 소속 메릴랜드 하원의원 엘라이자 커밍스가 손을 잡았다. 당파를 넘어 대법원에 경호를 강화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케이건은 당시 두 의원이 전한 취지를 이렇게 옮겼다. “우리는 당신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봅니다. 인사관리처장보다도 경호가 부실하다니, 더 잘해야 합니다.”

이해관계 구도: 예산을 쥔 쪽 vs 경호가 급한 쪽

이번 청문회의 구도는 단순하지 않다. 한쪽엔 경호 예산이 절실한 대법원이 있다. 다른 한쪽엔 그 예산을 승인하고 대법원 윤리까지 감독하려는 의회가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변수가 겹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와 출생시민권 등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공개적으로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 대목이 청문회에서 질문의 소재가 됐다.

왜 지금 터졌나

시점이 절묘했다. 위협이 급증한 2026년, 마침 대법원이 2019년 이후 처음으로 의회에 직접 나온 순간과 겹쳤다.

한 가지 사건이 위협의 불씨를 키웠다. 2022년 돕스 판결 유출 사건이다. 낙태권을 뒤집은 이 판결의 초안이 사전에 새어 나가면서, 대법관을 겨눈 위협이 다시 크게 늘었다. 그리고 지금은 예산 심사 시즌이다. 돈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에서, 의회의 윤리 감독 요구까지 함께 터져 나왔다.

Q&A로 짚어보기

Q1. 대법관 경호가 왜 이렇게 급하게 늘었나요?

위협 자체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케이건 대법관은 2026년 한 해에만 위협이 35% 늘었다고 증언했다.

배럿의 스와팅 사건, 대법관들에게 배달되는 익명 소포가 그 실상을 보여준다. 대법원이 요청한 예산 증액분의 대부분이 경호로 향하는 이유다.

Q2. ‘스와팅’이 정확히 뭔가요?

누군가를 노려 허위 신고를 넣고, 그 집으로 무장 경찰을 출동시키는 수법이다. 겁을 주거나 위험에 빠뜨리려는 목적이다.

배럿의 경우 대법원 경호팀이 지역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해 급습을 막았다. 자체 경호가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Q3. 트럼프 대통령의 판결 비판이 이 위협과 관련이 있나요?

이 질문이 청문회에서 직접 나왔다. 민주당 소속 로드아일랜드 상원의원 잭 리드가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출생시민권 판결에 격렬히 반발해 온 것이 대법관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느냐는 취지였다.

케이건의 답은 선을 그었다. 비판은 괜찮지만 협박은 다르다는 것이다. 자세한 발언은 아래 ‘양측의 시각’에서 다룬다.

Q4. 대법원 윤리 규정이 왜 함께 논란이 됐나요?

의회와 행정부는 50달러가 넘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대법원에는 그런 제한이 없다.

민주당 소속 코네티컷 하원의원 로자 들로로가 이 점을 문제 삼았다. 대법원에도 같은 한도를 적용하고, 이를 강제할 집행 장치를 두자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Q5. ‘그림자 소송절차’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정식 변론 없이 긴급하게 처리하는 신속 소송절차를 말한다. 영어로는 ‘섀도 도킷(shadow docket)‘이다.

민주당 소속 메릴랜드 상원의원 크리스 밴 홀런은 이 절차가 트럼프 행정부 들어 부쩍 늘었다고 지적했다. 케이건은 대법원 스스로 이런 소송이 몰리도록 자초한 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구제가 가능하다는 걸 알면, 세상엔 ‘우리도 한번 노려보자’고 나설 똑똑한 변호사가 많으니까요.”

양측의 시각

이번 사안의 진짜 대립은 여야가 아니다. 사법부 윤리를 외부에서 감독할 것인가를 두고 갈린다. 강화하자는 목소리와, 사법부 독립을 이유로 신중하자는 목소리가 맞선다.

외부 감독을 강화하자는 쪽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원의 자율 윤리 규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들로로 의원이 앞장섰다. 그는 의회, 행정부와 똑같은 50달러 선물 한도를 대법원에도 적용하고, 이를 실제로 강제할 집행 장치를 두는 법안을 밀고 있다. 규정만 있고 강제할 방법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논리다.

리드 의원은 정치적 압박 자체를 겨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리한 판결에 격렬히 반발해 온 흐름이 판사들을 겁박하는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 지점에서 케이건 대법관의 답이 나왔다. 그는 특정 정당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다만 원칙은 분명히 했다. “비판은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하세요. 큰 도시에 산다는 건 온갖 비판에 노출된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나 그는 곧바로 선을 그었다. “협박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어느 진영이든 정치인이 판사를 겁박하려 든다면, 그건 정말로 선을 넘은 겁니다.”

사법부 독립을 지키자는 쪽

배럿 대법관은 외부 패널이 대법원 윤리를 집행한다는 발상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실무적 난제를 잇따라 던졌다.

“누가 그 판사들을 뽑습니까? 패널은 어떻게 구성하고요? 복잡한 문제가 정말 많습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물음이 산더미라는 지적이었다.

흥미로운 건 케이건의 태도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도 이 대목에서는 신중했다. 케이건은 집행 장치 자체에는 찬성한다면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려를 덧붙였다. 대통령이나 의회가 대법원에 외부 집행 체계를 강제하면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이건이 선호한 대안은 따로 있다. 은퇴한 판사들로 패널을 꾸려 윤리 규정을 집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배럿이 지적한 ‘누가 그 판사를 고르느냐’는 물음은 여기서도 그대로 남는다.

전망: 왜 중요한가

당장 지켜볼 지점은 예산이다. 대법원이 요청한 경호 증액분을 의회가 얼마나 승인할지가 첫 시험대다. 위협 수치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세출위원회가 어떻게 화답하느냐가 관건이다.

더 깊은 쟁점은 윤리 감독을 둘러싼 긴장이다. 의회는 예산과 감독이라는 두 개의 지렛대를 쥐고 있다. 대법원은 독립성을 방패로 삼는다. 외부 집행 장치를 두려는 시도가 법안으로 현실화될지, 아니면 배럿이 던진 실무적 난제들에 막힐지 아직 알 수 없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방탄조끼를 설명해야 했던 대법관의 목소리는 추상적 통계가 아니었다. 보수와 진보로 갈린 두 대법관이, 위협 앞에서는 같은 편에 섰다. 배럿의 말처럼, 판사들은 두려움 없이 일하고 있지만 위협 수위는 정말로 높다. 그 간극을 미국 정치가 어떻게 메울지 지켜볼 일이다.

📎 참고 소스

이 기사는 아래 2개 보도를 교차 확인해 종합했습니다. 국제정세 기사는 해외 언론만 참고합니다.

  1. NPR Supreme Court Justices Kagan, Barrett give chilling accounts of threats to their safety
  2. Fox News Amy Coney Barrett recalls heartbreaking question from 12-year-old son over bulletproof v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