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블룸버그가 싱가포르에서 기사를 통째로 지웠다

싱가포르 고등법원이 블룸버그에 장관 두 명 명예훼손 배상금 46만 싱가포르달러를 명령했다. 정부는 명예 보호라 하고, 언론계는 비판 보도 위축을 우려한다.

#싱가포르#언론자유#명예훼손

7월 14일 싱가포르 고등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문제의 기사는 블룸버그 웹사이트에서 사라졌다.

제목은 “싱가포르 대저택 거래, 갈수록 베일에 싸여”. 2024년 12월에 올라온 부동산 탐사 기사였다. 기사 한 편이 장관 두 명의 소송 끝에 통째로 지워졌다.

무슨 일인가

46만 싱가포르달러 배상 명령

싱가포르 고등법원은 블룸버그와 기자 로우 드웨이에게 배상을 명령했다. 금액은 46만 싱가포르달러다. 미화로 약 35만 6천 달러, 우리 돈으로도 큰 액수다.

돈을 받게 된 원고는 장관 두 명이다. K. 샨무감은 싱가포르의 국가안보 조정장관이자 전 법무장관으로, 내각의 실세로 꼽히는 인물이다. 탄 시렝은 노동 정책을 맡는 인력부 장관이다.

문제가 된 기사

기사는 싱가포르의 초고가 대저택(GCB, Good Class Bungalow) 거래를 다뤘다. 일부 부유층 매수인이 페이퍼컴퍼니 같은 수단으로 자기 신원을 숨기는 관행을 파고든 내용이었다.

여기에 두 장관의 사례가 등장한다. 샨무감 장관은 신탁을 통해 익명의 매수인에게 8,800만 싱가포르달러짜리 저택을 팔았다. 탄 장관은 관련자 추적이 어려운 “비공시 거래” 방식으로 약 2,700만 싱가포르달러짜리 저택을 샀다. 기사는 이 둘을 다른 여러 공인들의 사례와 함께 나열했다.

판사의 판단

재판을 맡은 오드리 림 고등법원 판사는 기사를 전체로 읽었다. 그리고 “통상적 의미”를 이렇게 봤다. 두 장관이 기존 규제를 이용해 비투명한 방식으로 부동산을 거래했고, “돈세탁 가능성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감시를 피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림 판사는 이를 원고들의 인격과 평판을 직접 훼손하는 “중대한 주장”이라고 규정했다. 이 판단이 배상 액수 산정에 반영됐다.

판결이 나오자 기사는 곧바로 블룸버그 웹사이트에서 내려갔다.

이 사건의 배경

외신을 상대로 이겨 온 나라

싱가포르 지도층은 오랫동안 비판자와 외신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해 왔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2009년이다. 지금은 폐간된 아시아 경제 전문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가 당시 리셴룽 총리와 그의 부친 리콴유 전 총리를 명예훼손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세운 초대 총리이고, 리셴룽은 그 아들로 오래 나라를 이끈 정치 명문가다. 당시 배상액은 40만 싱가포르달러가 넘었다.

이코노미스트와 뉴욕타임스도 과거 싱가포르 명예훼손 소송에서 배상 명령을 받은 외신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사건과는 별개의 과거 사례들이다.

무엇이 걸려 있나

한쪽에는 고위 장관들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라는 이해가 있다. 국가 안보와 노동 정책을 쥔 실세들이다.

다른 한쪽에는 국제 언론의 취재 자유가 있다. 초고가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 돈세탁 우려 같은 공익을 파헤치려는 저널리즘의 이해다. 이번 판결은 그 둘이 정면으로 부딪친 결과다.

왜 지금인가

기사는 2024년 12월에 올라왔다. 두 장관은 며칠 뒤 곧바로 소송을 냈다. 재판은 2026년 4월에 열렸고, 7월 14일 판결로 마무리됐다. 판결과 동시에 기사 삭제라는 즉각적 조치가 뒤따랐다.

Q&A로 짚어보기

Q1. 기사가 장관들이 잘못했다고 단정했나요?

아니다. 기사는 두 장관을 부동산 거래 관행을 다룬 여러 사례 중 하나로 나열했다.

쟁점은 그 나열이 어떻게 읽히느냐였다. 판사는 기사 전체의 “통상적 의미”가 장관들이 감시를 피하려 규제를 이용했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봤다.

Q2. 배상 말고 다른 조치도 있었나요?

있었다. 싱가포르 당국은 온라인 허위정보 방지법(POFMA)에 근거해 해당 기사에 “정정 고지”를 붙이라고 명령했다. POFMA는 2019년 제정된 가짜뉴스 대응법이다.

블룸버그는 이 명령에 따랐다. 다만 “제재 위협 하에” 정부 고지를 게재한 것일 뿐, 자사 보도는 계속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를 재게재하거나 논평한 다른 매체들에도 같은 정정 고지가 내려졌다.

Q3. 다른 소송도 있었나요?

두 장관은 별도 소송도 냈다. 블룸버그 기사에 대한 논평을 실은 독립 매체 디 온라인 시티즌의 편집장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이다. 이 소송에서도 장관들이 이겼다.

Q4. 블룸버그는 배상 명령을 따르나요?

따른다. 편집국장은 판결에 실망했다면서도 “당연히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자사 보도가 정확했다는 입장은 굽히지 않았다.

양측의 시각

판결을 지지하는 시각

법원과 정부 측 논리는 명확하다. 오드리 림 판사는 기사가 담은 주장이 “중대하다”고 봤다. 장관들이 돈세탁 의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감시를 피하려 규제를 악용했다는 뜻이고, 이는 뚜렷한 근거 없이 개인의 인격과 평판을 직접 훼손한다는 것이다.

장관 측은 재판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기사가 자신들을 부동산 거래 관행 기사 속 다른 사례들과 한데 묶어, 마치 자신들도 돈세탁 의혹이 있는 것처럼 “가장 명예훼손적인” 해석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POFMA 같은 법이 허위정보에 대응하고 공직자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오래 지켜 왔다.

언론 자유를 우려하는 시각

블룸버그 편집국장 존 미클스웨이트의 반박은 단호했다. 그는 성명에서 보도가 정확했고 중요한 공익에 부합했다고 밝혔다.

“장관들이 탄탄한 기사에 지나치게 무리한 해석을 부여했다.”

블룸버그 측 변호인단도 맞섰다. 기사는 장관들의 위법행위를 암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도 가치가 있는 사례들” 중 하나로 열거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장관들이 일반 독자의 해석이 아니라 “가장 명예훼손적인” 해석을 골라 씌웠다고도 반박했다. 기자가 장관들에게 수차례 입장을 물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더 넓은 우려도 있다. 싱가포르 지도층이 오랫동안 비판자와 외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겨 온 역사다. 비판자들은 이런 소송이 명예 보호를 넘어 비판적 보도와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쓰인다고 지적한다. 독립 매체 편집장을 상대로 한 별도 소송, 다른 매체들에까지 내려진 정정 고지도 그 근거로 거론된다.

전망: 왜 중요한가

이번 판결은 싱가포르에서 취재하는 국제 언론에 던지는 신호가 뚜렷하다. 고위 공직자의 이름을 부동산 거래 사례로 올릴 때, 그 서술이 어떻게 읽힐지까지 법정에서 다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켜볼 지점은 몇 가지다. 블룸버그가 배상은 따르되 보도 입장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 싱가포르 관련 탐사 보도의 수위가 어떻게 조정될지가 하나다.

POFMA 정정 고지가 이 기사를 다룬 다른 매체들로 번진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기사 한 편을 넘어 그것을 인용한 매체들까지 정부 고지 대상이 됐다.

판결을 명예 보호로 볼지, 비판 보도 위축으로 볼지는 아직 열려 있다. 그 평가가 앞으로 싱가포르를 취재하는 외신들의 판단에 어떤 무게로 작용할지가 결국 이 사건의 진짜 파장이 될 것이다.

📎 참고 소스

이 기사는 아래 2개 보도를 교차 확인해 종합했습니다. 국제정세 기사는 해외 언론만 참고합니다.

  1. BBC World Singapore court orders Bloomberg to pay $356,000 to ministers in defamation case
  2. NYT World Bloomberg Loses Landmark Libel Case in Singap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