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삶을 끝낼 권리를 택한 프랑스 하원

프랑스 국민의회가 조력사망 합법화 법안을 291 대 241로 가결했다. 상원은 세 차례 부결시켰고, 총리는 헌법위원회 심사를 요청했다. 법이 실제로 시행되기까지는 아직 관문이 남았다.

#프랑스#조력사망#마크롱#유럽

표결을 앞두고 한 가톨릭 주교가 의원들을 향해 경고를 보냈다고 전해졌다. 이 법에 찬성표를 던지면 영성체(성찬식에서 신자에게 나눠주는 빵과 포도주)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7월 15일, 프랑스 하원에서 손들이 올라갔다. 291 대 241.

조력사망(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수년간 프랑스를 갈라놓았던 문제였다. 가톨릭교회와 의료계 일부의 반대를 뚫고 나온 결정이다.

무슨 일인가

291 대 241, 네 번째 가결

프랑스 하원, 정식 명칭 국민의회가 조력사망 법안을 가결했다. 찬성 291표, 반대 241표였다.

하원이 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그동안 우파가 다수인 상원이 세 번 부결시켰다. 이번에도 상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은 하원에 있다.

누가 조력사망을 받을 수 있나

아무나 신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건이 촘촘하다.

대상은 성인 프랑스인으로, “중대하고 불치인” 병이 “진행 또는 말기 단계”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지속적인 신체적, 심리적 고통이 견딜 수 없거나 치료로도 가라앉지 않아야 한다.

죽음에 이르는 절차

절차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환자가 먼저 의사에게 자신의 뜻을 자유롭게 밝혀야 한다.

그러면 의사가 15일간의 상담을 거쳐 결정한다. 이후 2일의 숙려 기간이 주어진다. 마지막엔 환자가 직접 치사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 몸이 그럴 수 없는 상태면 의사나 간호사가 대신할 수 있다. 시술 당일, 의사는 환자의 결정을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가결됐다고 바로 시행되는 게 아니다. 관문이 하나 남았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가 법안의 일부를 헌법위원회(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심사하는 9인 기구)에 회부할 예정이다. 이 심사를 통과해야 법이 발효된다.

이 사건의 배경

프랑스는 왜 이렇게 늦었나

조력사망을 둘러싼 논쟁에서 프랑스는 유럽의 후발주자다.

이웃 나라들은 진작 문을 열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2002년부터 조력사망을 허용했다. 스위스는 조력자가 사익 없이 도울 경우 훨씬 전부터 허용해왔다. 그 뒤로도 여러 유럽 국가가 관련 법을 만들었다. 프랑스는 이 흐름에 뒤늦게 합류하려는 참이다.

마크롱, 그리고 두 명의 낯선 이름

이 법의 뒤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임종 관련 입법을 지지해온 인물이다.

반면 절차를 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다. 프랑스 정부의 수반으로, 이번 법안의 헌법위원회 회부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다. 그는 법의 일부 조항에 “자신만의 우려”를 갖고 있다고 알려졌다. 마크롱과 같은 편이지만, 마냥 밀어붙이지는 않는 셈이다.

반대 진영에도 얼굴이 있다. 브뤼노 르타이유. 보수 성향의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이다. 그는 이 법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왜 하필 지금인가

마크롱은 오래 이 법을 원했다. 그런데 2년 전 그가 조기 총선을 소집하면서 입법이 크게 지연됐다.

미뤄졌던 법안이 이번에 다시 하원 문턱을 넘었다. 여기에 여론도 힘을 실었다.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 다수는 말기 환자에게 완화의료(고통을 덜어주는 치료)와 조력사망 중 선택할 권리를 주는 데 찬성했다.

Q&A로 짚어보기

Q1. 조력사망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번 법에서는 환자 본인이 직접 치사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몸이 스스로 투여할 수 없을 때만 의사나 간호사가 대신할 수 있다.

Q2. 원하면 누구나 요청할 수 있나요?

아니다. 문턱이 여러 겹이다.

“중대하고 불치인” 병이 진행 또는 말기 단계여야 하고, 고통이 견딜 수 없어야 한다. 15일 상담과 2일 숙려를 거치고, 시술 당일 결정을 재확인한다. 찬성 측은 이 겹겹의 장치가 남용을 막는다고 본다.

Q3. 하원을 통과했으니 이제 시행되나요?

아직이다. 헌법위원회의 심사가 남았다.

총리가 법안 일부를 이 기구에 회부하고, 그 문턱을 넘어야 법이 발효된다.

Q4. 총리는 어떤 점을 걱정하나요?

르코르뉘 총리 측은 세 가지 쟁점의 검토를 특별히 요청했다.

첫째, 환자 결정 확인까지 주어지는 2일의 숙려 기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이다. 둘째, 판단력이 손상돼 법적 보호를 받는 환자가 과연 자유롭고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를 할 수 있느냐다. 셋째, 원래 완화의료를 위해 존재하던 시설이 조력사망 서비스까지 맡는 게 적절하냐는 문제다.

Q5.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프랑스는 오히려 늦은 편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2002년부터, 스위스는 그 이전부터 허용해왔다.

영국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조력사망 법안이 올해 초 정체됐고, 9월에 의회로 복귀할 예정이다.

양측의 시각

찬성 측

찬성 측의 논리는 자율성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처한 사람에게, 삶을 어떻게 마감할지 스스로 정할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대신 엄격한 안전장치로 남용을 막는다고 주장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표결 뒤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이 사안은 개인적이면서도 중대한 문제이며, 삶과 고통, 존엄성에 관한 것이기에, 가능한 접근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시간을 들여 경청하고 대화하며 토론하는 것.” 신중한 과정을 거친 결정이라는 뜻이다.

하원 다수 291명이 여기에 손을 들었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다수 여론도 이 편에 서 있다.

반대 측

반대 진영의 중심에는 가톨릭교회가 있다. 한 주교는 법안에 찬성한 의원들에게 영성체를 거부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해졌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일부와 여러 종교 단체도 반대에 가세했다. 이들은 조력사망 절차가 남용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 대선주자 브뤼노 르타이유의 반박은 선명했다. “형제애에 기반한 사회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보호하고 돌본다. 가장 연약한 이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생명존중 단체 알리앙스 비타는 거리로 나섰다. 이들의 반대 집회에서 한 시위자는 “짐(Burden)“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조력사망 합법화가 노약자와 환자에게 ‘나는 가족과 사회의 짐’이라는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전망: 왜 중요한가

당장의 관문은 헌법위원회다. 르코르뉘 총리가 회부한 세 가지 쟁점을 이 기구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법의 운명이 달렸다.

숙려 기간 2일, 판단력이 손상된 환자의 동의 능력, 완화의료 시설의 역할. 이 세 지점이 그대로 통과할지, 손질될지가 첫 번째 관전 포인트다.

더 큰 그림도 있다. 프랑스가 이 문을 완전히 열면, 유럽에서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나라가 또 하나 늘어난다. 마침 영국도 유사한 법안을 9월 의회에서 다시 다룬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와 가장 연약한 이들을 지킬 의무. 그 사이 어디에 선을 그을지를 두고, 유럽의 논쟁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이다.

📎 참고 소스

이 기사는 아래 2개 보도를 교차 확인해 종합했습니다. 국제정세 기사는 해외 언론만 참고합니다.

  1. BBC World French MPs approve assisted dying law with strict rules after years of argument
  2. Al Jazeera French Parliament approves landmark assisted-dying b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