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바다 없는 해사, 활주로 없는 공사가 온다

정부가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대전 자운대에 4년제로 통합하는 기본계획을 공개한다. 서울 육사는 문을 닫고, 예비역 2000명은 국방 개악이라며 국회 앞에 모였다.

#국방 개혁#사관학교 통합#이재명 정부

발표를 100분 앞두고, 계획은 돌연 취소됐다.

지난 7월 6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내놓기로 한 사관학교 통합안이었다. 그로부터 열흘, 계획은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이번엔 처음 알려진 것보다 훨씬 센 카드가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대전 자운대에 4년제 국군사관학교

정부가 육군·해군·공군 사관학교를 하나로 합친 국군사관학교를 새로 만든다. 자리는 대전 유성구 자운대다. 군사 교육과 훈련시설이 몰려 있는 약 555만㎡ 부지다.

7월 16일 오전 8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국군사관학교 창설 기본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골자는 하나다. 생도들을 통합 국군사관학교로 뽑아 4년 내내 자운대에서 함께 교육한다는 것이다.

당초 검토안은 이보다 온건했다. 1·2학년은 공통교육, 3·4학년은 육·해·공군 사관학교로 나눠 각군 특화교육을 하는 이른바 ‘2+2 방식’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무게를 실은 쪽은 더 강한 통합안이다. 기존 육·해·공사는 국군사관학교 산하 ‘육해공군 학부’로 축소 편입된다. 1·2학년은 공통교육, 3·4학년은 학부별 전공교육을 받는다.

서울 육사는 문을 닫는다

시설이 자운대에 다 갖춰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 옛 태릉 자리에 있는 지금의 육군사관학교를 임시 국군사관학교로 쓴다.

일정은 이렇게 거론된다. 2028학년도에 서울 육사 터에서 먼저 출범한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 첫 대상이 될 수 있다. 이후 2032년께 자운대로 옮긴다. 이전이 끝나면 서울의 육사는 문을 닫는다.

청주에 있는 공군사관학교,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는 각군 전문 교육을 위한 시설로 일부만 남는다.

종합대학까지 가는 큰 그림

정부의 구상은 사관학교 셋을 합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국군사관학교를 종합대학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로 전해졌다.

단계는 셋이다. 1단계로 육·해·공사를 통합한다. 2단계로 자운대에 있는 국군간호사관학교와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를 아우른다. 3단계로 학군·학사장교 과정을 설치하고 박사과정(국방과학기술대학원)까지 신설한다. 이 그림이 다 실현되면 기존 사관학교들은 장기적으로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국회 입법이라는 관문

당장 학교부터 만들 수는 없다. 국군사관학교 설치법 제정 등 국회 차원의 입법이 필요하다. 정부는 초대 생도를 언제 뽑을지 등 세부 일정은 입법 절차가 끝난 뒤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통합 구상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다. 부지가 대전 자운대로 좁혀진 데는 현 정부의 지방주도 성장, 지역균형발전 기조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Q&A로 짚어보기

Q1. 왜 하필 대전 자운대인가?

군사 교육·훈련시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여기에 정치적 배경도 읽힌다. 지방주도 성장을 강조하는 정부 기조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있다. 국방부 산하 자문위원회의 ‘사관학교 개혁위원회’는 애초 1·2학년 통합교육을 서울 육사에서 하자고 권고했었다. 우수한 인재와 교원을 확보하려면 서울이 유리하다는 논리였다. 정부는 이 권고를 벗어나 대전을 택했다.

Q2. 기존 해사, 공사, 육사는 어떻게 되나?

셋 다 지금 모습으로 남지 못한다. 국군사관학교 산하 학부로 쪼그라들거나, 각군 전문 교육용 시설로 일부만 활용된다. 서울의 육사는 자운대 이전이 끝나면 폐교된다.

반대 측은 이 대목을 가장 아프게 본다. 학교 간판만 바꾸는 게 아니라 각 군 사관학교의 뿌리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Q3. ‘2+2 방식’과 4년 통합안은 뭐가 다른가?

2+2 방식은 앞 2년만 함께 배우고 뒤 2년은 다시 육·해·공으로 흩어지는 구조다. 통합의 색이 옅다.

정부 안에서는 이 방식이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학교 기관이 오히려 3개에서 4개로 늘어 통합 취지가 퇴색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4년 내내 한곳에서 함께 배우는 강한 통합안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전해졌다.

Q4. 통합 생도는 언제부터 뽑나?

빠르면 2028학년도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첫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전제가 있다. 국회에서 설치법이 통과돼야 한다. 정부도 초대 생도 선발 시기는 입법이 끝난 뒤에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Q5. 예비역들은 왜 이렇게 반대하나?

핵심은 ‘전문성’과 ‘정체성’이다. 이들은 각 군 사관학교가 그 군만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길러온 공간이라고 본다. 이걸 한곳에 몰아넣으면 그 뿌리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앞서 7월 8일 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약 2000명이 국회 앞에 모였다. ‘사관학교 통합 반대 국민 총궐기대회’였다. 이들은 이틀 전 낸 입장문에서 통합안을 “군의 역사와 전통, 전문성을 훼손하는 일종의 정책 실험이자 국방 개악”이라고 규정했다.

양측의 시각

추진 측: “미래전에 대비할 골든타임이다”

정부와 국방부는 통합의 목표로 세 가지를 든다. 미래전 대비, 각 군의 합동성 강화, 정예 장교 양성이다.

“미래전 승리를 이끌 정예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세계 최고 수준의 사관학교 창설 기본 계획을 조만간 상세히 설명하고, 공청회·정책설명회 등 공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구체화해 나갈 예정이다.” (국방부 관계자)

찬성론자들은 시간을 강조한다. 서남열 국방안보포럼 회장(예비역 대령)은 인공지능 등장으로 전장 환경이 숨 막힐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래전에 대응할 새로운 장교 양성이 절박한 과제가 됐다”며 “사관학교 교육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육사 출신의 모교 지키기가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간다고도 덧붙였다.

바다와 활주로가 없다는 지적에는 반론이 있다. 해군과 공군의 실습은 여름철에 집중돼 있어, 그 기간만 진해나 청주로 이동해 훈련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사 생도들은 지금도 여름에 전투수영 1주, 군사실습 4주를 바다에서 소화한다.

반대 측: “폐교를 앞당기는 정책 실험이다”

예비역 장성과 육·해·공사 총동창회는 이 계획을 ‘졸속 통합’으로 규정한다.

가장 날 선 지적은 실습이다. 이기식 전 해군사관학교장(예비역 중장)은 함정과 항공기 운용 실습이 생도 시절에 완비된 여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4년간 자운대에서 통합교육을 하면서 1년에 한두 달 실습하는 수준으로 전문성 함양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육해공사의 폐교를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육사총동창회 관계자)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사관학교의 핵심은 각 군의 전문성과 정체성이다. 합동성은 장교로 임관한 뒤 합동 근무와 교육을 거쳐 심화하면 된다. 미국 같은 군사강국도 합동성을 강조하면서 육·해·공사는 따로 유지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효과에 대한 근본적 의문도 있다. 육사 교장을 지낸 한 예비역 장성은 사관학교의 질적 저하가 처우와 근무 여건, 전역 후 불투명한 진로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통합만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배출된 초임장교 6169명 가운데 사관학교 출신은 550명, 8.9%에 그친다. 90% 이상을 길러내는 학군·학사 과정은 그대로 두고 사관학교만 합쳐서는 합동성 강화가 구호에 머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부지 선정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했다. 정부가 ‘육사를 전남 장성으로 옮긴다’는 말을 흘렸다가, 서울에서 더 가까운 대전 자운대로 발표해 반대 여론이 수그러들기를 기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전망: 왜 중요한가

이번 계획은 육사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대 전선이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이 관건이다.

지금까지 통합에 가장 세게 맞선 쪽은 육사 예비역이었다. 그런데 4년 통합안은 진해의 해사, 청주의 공사까지 대전으로 끌어와야 한다. 해사와 공사 출신 예비역까지 반대 운동에 합류할 가능성이 열렸다. 지역사회의 반발과 대규모 이전 예산도 걸림돌로 꼽힌다.

지켜볼 지점은 세 가지다. 국회에서 설치법이 실제로 통과될지, 공청회 같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반대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지, 그리고 2028학년도 서울 출범과 2032년 자운대 이전이라는 일정표가 계획대로 지켜질지다. 육사 총동창회 관계자의 말은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졸속 통합 반대, 육사 지방 이전 반대란 주장은 변함없다.”

📎 참고 소스

이 기사는 아래 5개 보도를 교차 확인해 종합했습니다.

  1. 조선일보 바다 없는 海士, 활주로 없는 空士 현실화되나
  2. 동아일보 통합 사관학교 '자운대 4년제' 유력… 기존 육해공사는 학부로 축소
  3. 연합뉴스 '대전 자운대 4년제' 사관학교 통합안, 오늘 당정협의서 공개
  4. 한겨레 육·해·공 '통합 생도' 선발, 2028학년도부터 가능할 듯
  5. 경향신문 육해공 '4년제 통합 사관학교' 유력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