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개헌 한마디에 등 돌린 쪽은 여당이었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을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답하자 하루 만에 청와대와 여당 당권주자들까지 줄줄이 선을 그었다.
7월 28일, 국회 사랑재. 조정식 국회의장의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가 무르익을 무렵 질문 하나가 날아들었다. 현직 대통령이 한 번 더 할 수 있는 개헌,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었다.
조 의장은 “시기상조”라고 답을 시작했다. 그러나 뒤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결국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
그 한 문장이 하루 만에 정국을 뒤집었다.
무슨 일인가
사랑재에서 나온 답변
기자의 질문 취지는 분명했다. 야권이 개헌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로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연장 문제가 거론된다는 것이었다.
조 의장의 답은 두 갈래였다. 지금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것, 그리고 결국은 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었다. “여러 정치적 당사자들이 어떻게 합의하느냐에 달린 문제”이며, “개헌 자문위나 개헌특위를 통해서 나중에 다 의견들이 수렴되지 않겠나”라는 말이었다.
야당이 읽어낸 신호
국민의힘 등 야권은 이 답변을 “이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파문은 그날 밤부터 커졌다.
핵심은 조 의장이 하지 않은 말이었다. “불가능하다”는 한마디가 빠졌다는 점을 야당은 파고들었다.
자정 무렵의 해명글
조 의장은 같은 날 자정 무렵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하루 사이 두 번째 입장이었다.
“헌법 제128조 2항의 내용은 존중돼야 하고, 향후 이뤄질 개헌 논의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그 대상이 아니다.”
간담회 답변은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해 개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치 주체 간 합의와 국민의 선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취지의 기본 절차를 밝힌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의와 다르게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켜 유감”이라고 적었다.
해명은 나왔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 논란의 배경
헌법 128조 2항이라는 벽
이 사안의 출발점은 현행 헌법 조문 하나다. 헌법 128조 2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개헌으로 연임제를 만들어도, 개헌을 제안할 때의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지배적인 해석이다.
이 조항은 1987년 헌법의 산물이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87년 헌법의 핵심을 직선제와 단임제로 설명하며,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현직은 개헌 관련 사항에 귀속되지 않는 걸로 했다”고 말했다.
왜 하필 지금 터졌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다만 이 정부 임기 안에 연임제 개헌이 이뤄져도 이 대통령 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그래서 연임 개헌은 원래 ‘논쟁거리가 아닌 사안’에 가까웠다. 그 잠긴 문을 국회의장이 건드렸다는 것이 야당의 시각이다.
타이밍도 나빴다. 논란이 터진 시점에 이 대통령은 브라질 순방 중이었다. 당사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임기를 둘러싼 공방이 서울에서 벌어진 셈이다.
하루 만의 총력 진화
7월 29일,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 당권주자들이 일제히 나섰다. 방향은 하나였다. 조 의장과 거리를 두는 것.
국회의장을 감싼 여권 인사는 사실상 없었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회의장은 헌법을 지켜야 하며 87년 헌법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 대통령 단임제인데, 이를 쉽게 이야기한 것은 책무 저버린 것”이라고 했다.
Q&A로 짚어보기
Q1. 조 의장이 연임 개헌을 하자고 한 건가
본인은 아니라고 밝혔다. 개헌이 성사되려면 정치 주체 간 합의와 국민의 선택이 필요하다는 절차를 설명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해명이다.
다만 야당은 다르게 봤다. “시기상조”라며 여지를 남긴 것 자체가 문을 열어둔 신호라고 주장했다.
Q2. 헌법을 고치면 현직 대통령도 연임할 수 있나
지배적 해석은 “아니다”이다. 128조 2항이 개헌 제안 당시의 대통령을 적용 대상에서 빼놓았기 때문이다.
절차의 벽도 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개헌에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인 20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Q3. 청와대는 왜 이렇게 세게 반응했나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헌법 128조 2항을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적 합의”라고 표현했다.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의장도 해명했고 대통령도 불가하다고 했는데 계속 “말해봐” 하는 식으로 대통령을 정치 논쟁에 끌어들인다며 “매우 강한 유감”을 밝혔다.
Q4. 여당 안에서는 어떤 말이 나왔나
당권주자들이 먼저 선을 그었다.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 같으면 ‘헌법 128조상 불가능한 일입니다’라고 깔끔하게 정리했을 것”이라고 했다.
송영길 전 대표는 더 나갔다. “발언 자체가 적절치 않다”며 “사과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의 여당 의원은 “너무 큰 폭탄”이라고 했다.
Q5. 진행 중인 개헌 논의는 어떻게 되나
불투명해졌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연임 문제를 논의하겠다면 “모든 개헌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정의당도 논평에서 “이런 발언은 기껏 시작된 개헌 논의를 단숨에 좌초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양측의 시각
보수·우파의 시각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7월 29일 오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조 의장을 정면 겨냥했다. “이재명 대선 설계자가 연임 설계자로 나선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조 의장이 “‘국민 선택’이라는 아전인수격 조건까지 갖다붙였다”며, “어떻게든 이 대통령 연임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법까지 뜯어고쳐 장기 집권하려는 시도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장 대표가 요구한 해법은 짧았다. “연임은 없다 다섯 글자면 모든 논란은 한순간에 종식되고 새로운 논란이 발생할 여지도 없다.”
“도대체 왜 ‘연임은 없다’는 다섯 글자를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그는 “이재명 재판 취소와 연임 개헌을 시도한다면 그날이 정권의 마지막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순방 중인 대통령을 향해 “돌아오기도 전에 정권 문 닫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다섯 글자를 말하고 들어오라고 했다.
친명계가 연임에 매달리는 이유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피할 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장 대표의 주장이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현직 대통령 연임은 현행법상 금지돼 있으며 이 부분은 개헌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적었다. 박충권 수석대변인은 “‘국민의 선택’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정권 연장을 도모하려는 정략적 사심”이라고 논평했다.
야권 밖에서도 견제론이 나왔다. 이동훈 개혁신당 수석대변인은 개헌의 방향이 “대통령 권력을 더 키우는 일이 아니라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라고 했다.
진보·좌파의 시각
여권의 반박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홍익표 정무수석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행 헌법에 현직 대통령의 연임을 포함한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조 의장 사이에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관측도 부인했다. 홍 수석은 “음모론처럼 청와대 측과 교감이 있어서 하는 거라고 하는데 전혀 그런 적이 없다”며, 자신은 연임 개헌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답을 피했다는 야당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이 나왔다. 홍 수석은 여야 대표 오찬 당시 이 대통령이 “개헌저지선을 야당이 갖고 있고, 현행 헌법상 불가능한데 그게 가능하겠냐”고 답했다며 “일방적인 얘기를 내세우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우리나라 헌법 체계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고 국민도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발언이다. 강 실장은 “청와대와 대통령은 순방 성과에 집중하기도 바쁘다”고 덧붙였다.
여권 내부의 온도는 조 의장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여당 당권주자들이 야당보다 먼저 사과를 입에 올렸다.
정청래 전 대표는 홍 수석 발언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썼다. 이어 “조 의장이 다시 한번 해명하고 필요하면 사과도 고려해 보심이 어떨까”라고 했다.
송영길 전 대표는 개헌의 실익을 근거로 들었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비상계엄 발동 요건 강화, 감사원 국회 이전 같은 과제를 임기 내에 이뤄야 하는데 “여기에 대통령 연임 문제가 결부되면 야당이 동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당 내부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전망: 왜 중요한가
이 공방의 실질은 개헌의 내용이 아니라 신뢰다. 헌법 조문상 불가능하다는 데는 양쪽이 사실상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논란이 이어지는 이유는 하나다. 야당은 대통령의 직접 선언을 요구하고, 청와대는 이미 여러 번 밝혔다며 응하지 않는다.
지켜볼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 이 대통령이 브라질 순방에서 돌아온 뒤 연임 문제를 직접 언급할지. 둘째, 조 의장이 추가 해명이나 사과를 내놓을지. 셋째, 개헌 자문위와 개헌특위 논의가 이 파문을 넘어 굴러갈 수 있을지.
다섯 글자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개헌 논의 전체의 운명을 쥐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