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핵잠 특별법 첫 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

국방부가 핵추진잠수함 특별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비확산 선언을 법 조문에 못 박으면서, 사업 속도를 위한 절차 특례도 함께 담았다.

#한국 정치#국방#한미관계#핵추진잠수함

지난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 잠수함사령부에 정박한 잠수함 신채호함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승조원들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사흘 뒤, 국방부가 법안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름부터 길다. ‘핵추진잠수함의 획득·운영 및 안전관리 등에 관한 특별법’.

그 법의 기본원칙 첫 줄에는 이런 문장이 박혀 있다.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않겠다는 선언이다.

무슨 일인가

왜 새 법까지 만드나

국방부는 7월 29일 이 특별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핵추진잠수함을 어떻게 확보하고, 운영하고, 정비하고, 나중에 어떻게 해체할지까지 한 법에 담았다.

이유는 국방부 설명에 나와 있다. 핵추진잠수함은 “무기체계와 원자력이 결합한 우리나라 최초 사례”라는 것이다.

“방위사업 및 원자력 안전관리 등 여러 법률에 걸친 사항을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특성으로 인해 현행 법령체계로는 사업 전반을 체계적으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일정도 이미 짜여 있다. 9월 7일까지 의견을 받고 국회에 제정안을 낸다. 국방부 관계자는 “연내 특별법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 첫머리에 새긴 다섯 가지 원칙

제정안이 내건 기본원칙은 다섯 개다. 그중 첫 번째가 핵심이다.

  • “핵무기의 개발·제조·보유 또는 사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핵물질 전용 또는 비확산 체계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 핵확산금지조약(NPT, 핵무기 보유국을 늘리지 않기로 한 국제조약) 등 국제규범을 지킨다
  • 핵연료의 전주기, 즉 확보부터 운반·사용·저장까지를 국제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기록하고 관리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감시하는 유엔 산하 기구) 등의 정당한 확인 절차에 협조한다
  • 원자로와 방사성 물질의 안전관리를 최우선에 둔다
  • 과학기술 발전 수준을 반영해 안전기준을 정한다

정부는 지난 5월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을 내놓으며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말로 했던 약속을 이번엔 법 조문에 옮겨 적은 셈이다.

그리고, 속도를 위한 특례

제정안의 다른 축은 속도다.

우선 사업타당성조사를 건너뛸 수 있게 했다. 대형 무기체계 사업을 시작하기 전 방위사업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사전 검증 절차인데, 핵추진잠수함 사업은 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방위사업청장은 연구개발과 시험평가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방위사업계약에서 원가를 따지는 규정도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

위원장은 국무총리, 기한은 5년

추진 체계도 새로 만든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핵추진잠수함전략위원회’다.

이 위원회가 다룰 사안은 무겁다. 핵잠 시설을 어디에 설치할지, 돈은 어떻게 마련할지 같은 중요사항을 심의한다.

국방부 장관이 부위원장을 맡고 해군참모총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간다. 위원은 20명 이내다. 다만 이 위원회는 법 시행일부터 5년간만 운영된다. 사업 초기의 절차와 제도를 빠르게 자리잡게 하려는 한시 조직으로 읽힌다.

장기 밑그림은 따로 있다. 국방부 장관이 10년마다 핵추진잠수함 기본계획을 세워 시행한다.

8000t급 3척, 아직 비어 있는 칸들

정부가 추진 중인 것은 농축도 20% 미만의 저농축우라늄을 원료로 쓰는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이다.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235의 농도가 20%에 못 미치면 핵무기로 돌려쓸 위험성이 낮다고 평가받는다. 이 사업에는 ‘장보고 N사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졌다.

규모는 8000t급 3척이다. 왜 하필 3척인가. 군함은 작전, 대기, 정비의 3주기로 돌아가기 때문에 최소 3척이 있어야 1척을 늘 안정적으로 쓸 수 있다.

배치 시점은 보도마다 표현이 조금 다르다. 2030년대 중후반까지 도입해 배치한다는 설명이 있고, 2030년대 중반에 선도함(같은 형식의 군함 중 가장 먼저 건조하는 첫 배)을 물에 띄운 뒤 2030년대 후반 해군 일선 부대에 배치해 전력화한다는 설명도 있다.

정작 가장 궁금한 항목들은 아직 비어 있다. 함정의 구체적인 규모와 척수, 사업비, 건조업체, 그리고 핵연료를 어떻게 확보할지. 이 칸들은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채워질 전망이다.

Q&A로 짚어보기

Q1. 왜 3척인가, 1척이면 안 되나

군함은 작전, 대기, 정비를 번갈아 반복한다. 한 척이 정비에 들어가면 그 자리를 다른 배가 메워야 한다. 최소 3척이 있어야 언제나 1척을 안정적으로 굴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Q2. 저농축우라늄을 쓰면 핵무장 우려는 사라지나

우라늄-235 농도가 20% 미만인 저농축우라늄은 핵무기로 전용될 위험성이 낮다고 평가된다. 다만 그것만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앞세워 핵무장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고 보도됐다. 법률 첫 원칙에 비확산을 못 박은 것도 그 시선을 겨냥한 조치로 읽힌다.

Q3. 사업타당성조사를 면제하면 뭐가 달라지나

대형 무기체계 사업은 착수 전 이 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 관문을 건너뛰면 사업 착수가 그만큼 빨라진다. 대신 사전에 걸러낼 기회 하나가 줄어든다. 연구개발·시험평가 기간 단축, 원가 산정의 다른 적용까지 묶어 보면 속도에 무게가 실린 설계다.

Q4. 국회 문턱은 언제 넘나

국방부는 9월 7일까지 의견을 받은 뒤 국회에 제정안을 제출한다. 목표는 연내 제정이다. 특별법이 통과돼야 특례 조항도, 총리가 이끄는 전략위원회도 실제로 작동한다.

Q5. 미국과의 협상은 왜 변수인가

사업비, 건조업체, 핵연료 확보 방식 같은 핵심 항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사안들은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과 사업 추진 과정을 거치며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이 먼저 만들어져도 실체는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양측의 시각

추진 측의 논리

정부와 국방부의 출발점은 “현행 법으로는 안 된다”이다. 무기체계와 원자력이 처음으로 한 몸이 되는 사업이라 방위사업법과 원자력 안전 관련 법률에 걸쳐 있고, 그래서 하나로 묶어 규율할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려에 대한 답도 법문에 넣었다.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제일 앞에 세우고, NPT 준수와 IAEA의 확인 절차 협조까지 명시했다. 핵연료의 전주기를 투명하게 기록·관리한다는 조항도 같은 맥락이다.

속도 역시 명분이 있다. 타당성조사 면제와 기간 단축 같은 특례를 둬 사업 착수를 앞당기고,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전략위원회를 5년 한시로 세워 범정부 차원에서 초기 절차를 밀어붙이겠다는 구상이다.

신중론이 짚는 지점

첫 번째는 국제사회의 시선이다.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개발을 내세워 핵무장으로 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고 보도됐다. 정부가 비확산 원칙을 법률 첫머리에 배치한 것 자체가 그 우려의 존재를 보여준다.

두 번째는 절차다. 사업타당성조사 면제, 연구개발·시험평가 기간 단축, 원가 산정 규정의 다른 적용을 두고 “특혜 조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해졌다. 속도를 얻는 대신 무엇을 내주는가. 검증 절차를 덜어낸 만큼 사업비와 일정 관리의 부담이 나중에 돌아올 수 있다는 문제 제기다.

두 시각 모두 아직 국회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 조문 하나하나가 어떻게 다듬어질지는 지금부터다.

전망: 왜 중요한가

연내 제정이라는 목표는 국방부가 스스로 밝힌 시한이다. 9월 7일까지 의견 수렴, 그 뒤 국회 제출. 일정표가 짧다.

지켜볼 지점은 세 갈래다.

첫째, 국회에서 특례 조항이 원안대로 살아남느냐다. 타당성조사 면제와 기간 단축은 사업 속도를 좌우하는 대목이자, 지적이 집중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둘째, 미국과의 협상이다. 핵연료를 어떻게 확보할지, 어디서 배를 지을지, 돈은 얼마나 들지가 여기서 갈린다. 법이 먼저 서고 내용은 나중에 채워지는 구조다.

셋째, 전략위원회가 다룰 시설 설치지역과 재원조달이다. 5년 한시로 굴러갈 이 위원회가 무엇을 언제 결정하느냐가 사업의 실제 속도를 보여줄 것이다.

법 첫 줄의 약속과 그 뒤에 붙은 특례들. 두 가지가 함께 굴러가는 5년이 이제 시작된다.

📎 참고 소스

이 기사는 아래 2개 보도를 교차 확인해 종합했습니다.

  1. 동아일보 국방부, '핵잠 특별법' 입법예고…"연내 제정 목표"
  2. 한겨레 국방부, 핵추진잠수함 특별법 입법예고…국제사회 '핵무장 우려' 불식 초점